4년간 옮긴 국내 최대 은행나무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한 해의 끝자락, 단풍으로 물든 가을 풍경은 누구에게나 낭만이다. 하지만 그 수많은 가을 명소 중에서도 단 한 그루의 나무만으로 계절의 정수를 보여주는 장소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바로 경북 안동의 ‘용계리 은행나무’다.
수령 700년이 넘는 거대한 이 은행나무는, 보는 순간 숨을 멈추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사람보다 오래 이 자리를 지켜온 나무, 시간이 만들어낸 자연유산은 이 계절에 가장 깊은 감동을 선물한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수곡용계로 493-24 인근에 있는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된 보호수다. 높이 46.3미터, 가슴높이 둘레 14미터. 국내에서 가장 굵은 은행나무이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다음으로 오래된 나무로 평가받는다.
수령은 무려 700년 이상. 이 거목은 마을의 역사와 함께 자라왔고, 지금은 단풍철이면 수천 장의 노란 잎으로 마을 전체를 감싼다.
세계가 주목한 한 그루의 이식

이 나무는 원래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지만, 1990년 임하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했다. 당시 이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과 전문가들은 15m 높이의 흙을 쌓아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나무를 수직으로 옮겨 심는 대이식을 감행했다.
무려 4년간 이어진 작업에 25억 원이 투입됐고, 이 사례는 결국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나무 이식 사례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용계리 은행나무에는 오래된 이야기도 함께 깃들어 있다. 조선 선조 시기,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이 서울에서 내려와 이 마을에 정착하고 ‘은행나무 계’를 조직해 나무를 보호하며 매년 여름 친목을 나눴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마을은 댐으로 인해 사라졌지만, 탁씨의 후손들은 지금도 해마다 나무에 제사를 지내며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이 나무는 단순히 보호수 이상의 상징이다. 공동체를 잇고,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유산. 나무 아래 서면, 눈앞의 풍경보다도 더 깊은 시간의 감각이 느껴진다. 그 풍경 속에서 자연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닌, 주체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는 순간, 풍경이 바뀐다

나무를 만나기 위해서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인공섬으로 이어진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 아래 펼쳐지는 물빛과, 은행잎이 흩날리는 그 풍경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다.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처럼 ‘사각사각’ 잎사귀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고, 햇살이 내려앉은 황금빛 잎은 찬란하다.
주변에는 단풍나무도 함께 어우러져 있어 가을의 색감은 더 다채롭다. 길가에서부터 작은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멀리서부터 계절이 물들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거대한 중심에 다다르게 된다. 바로 그곳이 용계리 은행나무다.
단 한 그루 앞에서 마주한 가을

이곳은 입장료 없이 연중무휴로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전용 주차장은 없고 도로 갓길에 주차해야 한다. 별도의 편의시설은 없지만, 풍경과 감동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한 가을이 된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지금, 용계리 은행나무는 한 그루 나무로 완성된 가장 강렬한 가을의 정수다. 댐 건설과 함께 사라질 뻔한 생명을 수많은 노력과 시간, 사람들의 사랑으로 지켜낸 이 나무는 자연유산 보존의 살아 있는 상징이다.
그 크기나 역사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사람의 이야기가 더해졌기에 이 나무는 특별하다. 단풍 명소를 찾고 있다면, 올해는 이곳을 추천한다. 단 한 그루의 나무 앞에서 마음이 조용히 물드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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