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
단풍 절정기엔 ‘차 없는 거리’ 운영

가을이 오면 우리는 약속처럼 노란 은행나무 터널을 떠올린다. 하지만 수많은 단풍 명소 속에서 유독 한 곳이 단순한 풍경을 넘어 묵직한 역사의 울림을 전해온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저 아름다운 산책로일 것이라는 섣부른 예상은 이곳에 깃든 반세기의 이야기 앞에서 힘을 잃는다.
충무공의 숨결이 깃든 땅에서 시작된 국가적 염원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을 서정시(敍情詩)로 완성되었는지, 그 웅장한 시간의 파노라마 속으로 걸어 들어갈 시간이다.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
“노랗게 물드는 2.1km 명품길”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은행나무길 293 일원에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이 길의 시작은 1966년 시작되어 1974년 완공된 현충사 성역화 사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프로젝트와 그 궤를 같이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시작된 국가적 사업의 일환으로, 1973년 당시 10여 년생이었던 은행나무 350여 그루가 이곳 곡교천 제방 2.1km 구간에 정성스럽게 뿌리를 내렸다.
그로부터 50여 년, 한 세대의 시간을 훌쩍 넘긴 지금, 앳되던 묘목들은 하늘을 완전히 뒤덮는 장대한 거목으로 자라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황금빛 터널을 완성했다. 그 독보적인 가치는 일찍이 국가로부터 인정받았다.
2000년, 산림청이 주관한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거리숲’ 부문 우수작으로 당당히 선정되며 ‘전국의 아름다운 10대 가로수길’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은 것이다. 이는 단순한 풍광의 아름다움을 넘어, 역사성과 생태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입증받은 살아있는 문화유산임을 의미한다.
사계절의 색은 계속된다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화려한 가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으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거대한 자연의 캔버스다.
봄이면 길 옆으로 유유히 흐르는 곡교천 둔치가 노란 유채꽃으로 뒤덮여, 은행나무의 싱그러운 연둣빛 새잎과 강렬한 색채 대비를 이루며 생명의 환희를 노래한다.
여름에는 무성하게 자라난 나뭇잎들이 촘촘한 지붕을 만들어 짙은 녹색 터널을 이룬다. 뜨거운 태양을 완벽하게 가려주는 이 시원한 그늘 아래는 유모차를 끄는 가족부터 자전거 라이더까지 모두에게 최고의 휴식처가 되어준다.
그리고 마침내 가을이 절정에 이르면, 길은 약속처럼 황금빛으로 채색된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분홍빛 코스모스와 은은한 국화 향기는 오감을 완벽하게 사로잡으며 잊지 못할 가을의 순간을 선사한다.
누구나 더 현명하게 즐기는 방법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의 가장 큰 가치는 그것이 특정인에게만 허락된 비밀의 화원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일 년 중 단 몇 주만 한시적으로 개방하는 일부 사유림 형태의 은행나무 명소와 달리, 이곳은 연중 24시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완벽한 공공재다.
입장료와 주차비 모두 무료로 운영되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 장엄한 자연의 선물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가치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아산시는 매년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의 주말과 휴일, 차량 통행을 막는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한다.
이 기간 방문객들은 차 소음과 위험에서 벗어나 오롯이 걷고, 사진을 찍으며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물론, 최고의 경험을 위해서는 약간의 전략이 필요하다. 인기가 높은 만큼 주차 공간 확보가 관건인데, 총 5곳의 무료 공영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접근성이 가장 좋은 ‘은행나무길 공영주차장(송곡리 71-9)’과 ‘제1주차장(백암리 519-2)’은 주말 오전 이른 시간부터 만차가 되기 일쑤다.
만약 이곳이 붐빈다면, 무리하게 대기하기보다 다소 거리가 있더라도 ‘제2주차장(백암리 258)’이나 주말에 개방되는 ‘충남경제진흥원(은행나무길 223)’ 주차장, 혹은 ‘곡교천 야영장 임시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한 가지 기억할 점은 안전을 위해 은행나무가 심어진 메인 산책로와 데크길에서는 자전거 및 개인형 이동장치(PM)의 통행이 금지된다는 사실이다. 자전거 이용객들은 강변을 따라 잘 조성된 자전거 전용 도로를 이용해 안전하고 쾌적한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반세기의 역사가 빚어낸 숭고한 아름다움, 사계절 내내 변화하는 다채로운 풍경, 그리고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열린 공공의 가치까지.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은 단순한 사진 명소를 넘어, 걷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깊은 사색과 풍요로운 감동을 안겨주는 특별한 공간이다. 이번 가을, 역사가 만든 황금빛 터널 아래서 시간의 무게가 담긴 잊지 못할 추억을 새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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