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료·주차비 무료인데 이런 설경이라니”… 천연기념물 숲까지 품은 산사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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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 백양사
천년 고찰이 만들어내는 설경의 절정

백양사의 겨울
백양사의 겨울 / 사진=ⓒ한국관광공사 송정원

전남 장성의 깊은 산자락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피어나고, 고요한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물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린다.

백암산 자락에 자리 잡은 백양사는 가을 단풍으로만 기억되기엔 아까운 곳이다. 겨울이 찾아오면 사찰 전체가 순백의 빛으로 감싸이며, 천 년의 시간이 쌓인 고찰답게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날 백양사를 찾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남 장성 백양사

쌍계루 설경
쌍계루 설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여진모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1239에 위치한 백양사로 향하는 길은 산 속에 깊숙이 놓여 있어 겨울이면 더욱 신비로워진다. 오래된 갈참나무와 수천 그루의 고로쇠나무가 하얀 눈을 머금고 서 있다. 산림욕을 즐기듯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동안 눈이 바람에 스칠 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까지 더해져 한 폭의 겨울 산수화를 걷는 기분이 든다.

숲길이 조금씩 밝아질 때쯤 나타나는 첫 장면이 바로 쌍계루다. 계곡물을 막아 만든 연못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이 건물은 사찰의 문을 대신해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겨울이면 연못이 얼어붙기도 하고, 눈이 쌓인 처마가 물 위로 길게 드리우며 잔잔한 풍경을 만든다. 사진가들의 셔터 소리가 이어지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얼어붙은 연못에 비친 쌍계루의 모습은 계절의 깊이를 가장 아름답게 담아낸 장면 중 하나다.

백양사, 빛나는 겨울의 정취

백양사 설경
백양사 설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쌍계루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대웅전과 극락보전, 그리고 사천왕문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이라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극락보전은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겨울 햇살이 처마 밑에 걸릴 때 고즈넉함이 배가된다.

눈이 포근하게 내려앉은 지붕과 오래된 나무 기둥의 질감은 시간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풍경이라는 것을 조용히 말하고 있다. 이곳의 이름이 ‘백양사’가 된 데에는 하나의 설화가 깃들어 있다. 조선 선조 시기, 환양선사가 설법을 펼칠 때 흰 양이 법문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이후 백양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걷다 보면 사찰 뒤편을 둘러싼 비자나무 군락이 시야를 채운다. 약 5,000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은 사계절 내내 푸르지만 겨울이면 신비로운 분위기가 더해져 산사의 고요함과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겨울 산사의 깊이를 만나는 순간

백양사 다리
백양사 다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백양사 경내를 천천히 둘러본 뒤, 발걸음을 조금 더 옮기면 또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사찰 뒤편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약사암과 운문암, 천진암 등 여러 암자가 고요하게 자리한다. 특히 백양사에서 약 20분 남짓 오르면 닿는 약사암은 겨울철에 더욱 매력적이다.

설경이 내려앉은 백암산 능선이 겹겹이 펼쳐지고, 암자 아래로는 백양사가 마치 작은 점처럼 고요하게 내려다보인다. 바람이 잠시 멈추는 순간에는 주변의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평온하다. 암자 주변의 비자림과 상록수들은 눈이 내려도 푸른빛을 잃지 않아 겨울 산사의 위엄을 더한다.

걷는 동안 들리는 소리는 크게 세 가지뿐이다. 약하게 흐르는 계곡물, 멀리서 들리는 풍경 소리, 그리고 눈이 나뭇가지에서 스르르 떨어지는 소리. 이 세 가지가 뒤섞인 고요함 속에서 천년 고찰이 품어온 겨울의 깊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백양사 겨울 풍경
백양사 겨울 풍경 / 사진=전라남도 공식 블로그 심철

백양사는 오랫동안 가을을 대표하는 단풍 명소로 이름을 알렸지만, 겨울이 되면 또 다른 아름다움을 드러내 방문객을 사로잡는다. 특히 눈이 내린 직후에는 사찰 자체가 흰빛을 머금은 한 장의 그림처럼 변한다.

하늘이 맑게 열리는 날이면 사찰의 검은 기와와 눈의 흰색, 그리고 푸른 하늘이 완벽한 대비를 이루어 사진을 남기기에도 좋다. 가을의 붉은 단풍보다 겨울 풍경이 더 강렬하게 마음에 남는다는 방문객들의 이야기도 흔하다. 눈이 쌓였다가 금세 녹는 날에는 내려오는 길이 금빛 햇살과 어우러져 또 다른 설경을 보여준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곳이지만, 겨울 백양사는 특히 한 번 경험하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고요함과 장엄함, 그리고 자연이 만든 순백의 풍경이 어우러져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백양사 겨울
백양사 겨울 / 사진=전라남도 공식 블로그 심철

백양사의 겨울은 단순한 설경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사찰 건축물과 자연이 빚어낸 순백의 풍경이 만나 깊고도 신비로운 감성을 만들어낸다. 백양사는 연주무휴, 상시개방이며 입장료와 주차료 모두 무료라 더욱 여유로운 마음으로 풍경 속에 스며들 수 있다.

가벼운 산책부터 암자까지의 짧은 오름길, 그리고 눈꽃이 내려앉은 숲길까지 어느 곳을 걷더라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남 장성에서 겨울 여행지를 찾고 있다면, 눈 내린 백양사는 단연 압도적인 선택이다. 한 번의 방문만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만한 겨울의 순간을 선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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