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아미산
신라의 숨결과 보령호의 물결을 한눈에 담는 법

붉게 타오르는 단풍잎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은 그 자체로 완벽한 위로다. 이맘때면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만의 가을 산 하나쯤 품게 되지만, 만약 그 산이 천 년의 이야기를 품고 현대에 완성된 비경을 선물한다면 어떨까.
대부분의 단풍 명산들이 순수한 자연미를 뽐낼 때, 충남 보령의 아미산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건넨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산의 정상에 서면, 발아래 펼쳐지는 거대한 호수와 그 너머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놀라운 반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등산이 아닌,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특별한 가을 여행을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아미산

아미산은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풍계리 산1-1 일원에 자리한, 해발 638m의 산이다. 오늘날 ‘미산(米山)’이라는 지명의 뿌리가 되었을 만큼 지역의 상징과도 같은 이곳은, 오랜 세월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숨은 명산이었다.
그러나 1998년, 보령댐이 완공되며 거대한 인공호수 보령호를 품에 안게 되면서 비로소 그 진가를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산의 오랜 역사와 현대 공학이 빚어낸 물의 풍경이 만나,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독보적인 조망을 완성한 것이다.
이 산의 진정한 깊이는 1,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헌강왕 5년인 879년, 당대 최고의 지관(地官)이자 풍수지리 사상의 대가였던 도선국사가 이곳에 터를 잡고 ‘중대암’을 창건했다.
현재 충청남도 전통사찰 제29호로 지정된 중대암은 아미산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이정표 역할을 한다. 산 중턱에 고즈넉이 자리한 사찰을 거닐며, 천 년 전 신라인들이 보았던 풍경을 잠시나마 상상해보는 것은 아미산 산행이 주는 특별한 경험이다.
중대교 출발 추천 등산 코스

아미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대부분의 등산객은 역사의 숨결과 자연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코스를 선택한다.
바로 중대교에서 출발해 중대암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미산초·중학교 방면으로 하산하는 약 3시간 길이의 코스다. 별도의 입장료나 주차료는 없어 부담 없이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산행의 시작점인 중대교 인근에 차를 세우고 30분가량 포장된 임도를 따라 걸으면,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감나무 한 그루가 중대암의 입구를 알린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숲길이 시작되는데, 찾는 이가 아주 많지는 않아 수북이 쌓인 낙엽이 푹신하면서도 때로는 미끄러울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안전한 산행을 위해 등산화는 필수다.
숲은 오색 단풍으로 물들어 마치 따뜻한 색의 융단을 펼쳐놓은 듯하다.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맞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중대암에 닿는다.
잠시 숨을 고르며 약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 시야를 가리던 나무들 너머로 마침내 보령호의 물빛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헬기장과 장군봉을 지나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면, 드디어 해발 638m의 상봉, 아미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마주한 압도적 풍경

정상에 서는 순간, 힘겹게 올라온 모든 걸음이 보상받는 듯한 감탄이 터져 나온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것은 총 저수량 1억 1,690만 톤에 달하는 거대한 보령호의 압도적인 풍경이다.
굽이치는 산줄기들이 마치 병풍처럼 호수를 감싸 안고, 그 위로 가을 하늘이 푸르게 펼쳐진다. 충남의 다른 명산들이 주로 산과 능선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것과 달리, 아미산은 웅장한 산세와 거대한 호수가 어우러진 독보적인 조망을 자랑한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아미산은 산 전체가 불타는 듯한 붉은빛으로 물든다. 과거에는 부정한 사람이 산에 들면 화를 입는다는 전설이 내려올 만큼 그 단풍빛이 강렬하고 아름다웠다고 전해진다.
올가을, 천 년의 역사와 현대의 풍경이 공존하는 특별한 산에서 잊지 못할 추억과 함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모두 챙겨보는 것은 어떨까. 신라의 예지가 선택한 땅, 그 위에 펼쳐진 푸른 호수의 장관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아미산은 단풍이저렇게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사진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