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해서 갈 만큼 좋아요”… 시니어 사이 소문 난 피톤치드 가득한 400년 힐링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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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산숲
400년의 자연 속에서 되찾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

아홉산숲 차원의 문
아홉산숲 차원의 문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도형

스마트폰 알림이 1분마다 울리고, 끝없는 정보의 파도가 머릿속을 헤집는 시대. 우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온전한 고요함을 경험했을까? 진짜 휴식은 더 많은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비워낼 때 비로소 시작된다.

여기, 부산 도심 인근에 일상의 소음을 강제로 차단하고 자연의 소리만이 주인이 되는 400년 시간의 성역이 있다. 바로 아홉산숲이다. 이곳은 유명 관광지가 아닌, 지친 영혼을 위한 깊고 내밀한 처방전과 같다.

기장 아홉산숲
기장 아홉산숲 / 사진=기장군 공식블로그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미동길 37-1에 위치한 아홉산숲에 들어서는 순간, 세상의 볼륨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는 것은 인공적인 안내 방송이 아닌, 흙과 나무가 내뿜는 깊은 향기다.

코끝을 씻어내는 듯한 피톤치드 향은 그 자체로 첫 번째 치유의 시작이다. 발아래에서는 잘 다져진 흙길이 도시의 딱딱한 보도블록에 지친 발바닥을 부드럽게 받아준다. 내딛는 걸음마다 나는 ‘바스락’ 소리 외에 어떤 인위적인 소음도 허락되지 않는다.

이곳에는 흔한 유원지의 매점도, 분수도, 화려한 꽃길도 없다. 대신 수령 400년 된 금강소나무 껍질의 질감, 하늘을 가린 대나무 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의 무늬, 이름 모를 산새들의 청아한 노랫소리가 오감을 가득 채운다.

방문객은 관람객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잊고 있던 감각들을 하나씩 깨우게 된다. 이곳은 눈으로만 보는 숲이 아니라 온몸으로 듣고, 숨 쉬고, 느끼는 거대한 치유의 공간이다.

드라마 촬영지 아홉산숲
드라마 촬영지 아홉산숲 / 사진=기장군 공식블로그

또한 아홉산숲은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에서 주인공이 백마를 타고 차원을 넘나들던 신비로운 대나무 숲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 <대호>, <협녀, 칼의 기억> 등 굵직한 시대극들이 이곳의 깊고 장엄한 풍경을 빌려 시대의 무게를 담아냈다.

아홉산숲이 가진 시간의 결은 어떤 정교한 세트장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진정성을 부여했다. 이처럼 미디어를 통해 먼저 알려졌지만, 이 숲의 진짜 이야기는 카메라 앵글 너머, 400년의 세월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400년 전 시작된 치유의 역사

아홉산숲 관미헌
아홉산숲 관미헌 / 사진=기장군 공식블로그

이토록 깊은 평온함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홉산숲의 치유력은 약 400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은 남평 문씨 가문의 철학에서 비롯된다. 9대에 걸쳐 이 숲을 지켜온 문중은 단 한 번도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았다.

숲의 중심에 자리한 고택 관미헌(觀薇軒)은 ‘고사리 같은 작은 풀 하나도 귀하게 여긴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이름 속에 숲 전체를 관통하는 생명 존중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전쟁과 산업화의 광풍 속에서도 숲을 지켜낸 뚝심. 그것은 단지 소유물을 지키려는 욕심이 아니었다.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사는 숲은 사람과 하나”라는 믿음으로, 후대를 위한 생태 유산을 보존하려는 숭고한 책임감이었다.

총면적 52만㎡에 달하는 광활한 숲이 개발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굳건한 산주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방문객이 누리는 평화는 바로 이 400년의 헌신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금강송, 편백, 대나무가 건네는 맞춤 처방

아홉산숲 금강소나무
아홉산숲 금강소나무 / 사진=기장군 공식블로그

아홉산숲에서의 산책은 마치 자연이 조제해주는 맞춤형 처방전을 따라가는 여정과 같다. 각기 다른 나무 군락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어루만진다.

첫 번째 코스는 하늘을 찌를 듯 솟은 금강소나무 숲이다. 수백 년의 비바람을 견뎌낸 거대한 나무들 앞에 서면, 인간사의 자질구레한 걱정들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깨닫게 된다. 116그루에 달하는 보호수가 뿜어내는 장엄한 기운은 복잡했던 마음에 질서를 잡아주는 듯하다.

이어서 나타나는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은 ‘숨쉬기’의 기쁨을 되찾게 해준다. 강력한 피톤치드를 내뿜는 침엽수림 사이를 걸으며 깊게 호흡하면, 머리는 맑아지고 몸에는 활력이 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바로 대나무 숲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록의 터널 속으로 들어서면, 마치 다른 차원으로 들어선 듯 완벽한 몰입감을 경험하게 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만 개의 댓잎이 합창하는 소리는 그 어떤 명상 음악보다 깊은 평온을 선사한다.

온전한 쉼을 위한 방문 안내서

아홉산숲 대나무
아홉산숲 대나무 / 사진=ⓒ한국관광공사 부산울산지사 위브부산

이 특별한 치유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방문객의 협조 또한 필요하다. 아홉산숲은 최고의 휴식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100%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숲은 연중무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장 마감 오후 5시) 문을 연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8,000원이며, 이는 400년의 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데 쓰이는 소중한 투자다.

주차는 무료로 가능하다. 숲에서는 조용히 걷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눈과 마음에 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일상에 지쳐 완전한 재충전이 필요하다면 아홉산숲으로 향해보자. 그곳은 단순히 땀을 식히는 피서지가 아니라, 시간의 더께가 쌓인 자연 속에서 진짜 ‘나’를 되찾고 돌아올 수 있는 귀한 성소(聖所)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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