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주암리
고요한 마을에 내려앉은 천년의 금빛 가을

가을의 색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이 계절의 주인공이 붉은 단풍만은 아니다. 1,500년이라는 아득한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한 왕조의 탄생과 멸망을 모두 지켜본 거대한 생명체가 있다.
바로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이다. 이 나무는 단순한 고목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예고하고 마을을 지켜온 ‘신목’으로 추앙받아왔다.
짧게는 1~2주 후면 세상을 압도할 황금빛으로 물들 이 나무. 지금은 그 장엄한 변신을 앞두고 고요한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백제 사비 천도와 함께 뿌리내린 역사”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는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 148-1번지 외 4필에 자리한다. 1982년 11월 9일, 그 압도적인 가치와 역사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320호로 지정되었다.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국가유산포털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나무의 높이는 23m에 달하며, 가슴높이의 둘레는 무려 8.62m이다. 나무를 보호하는 구역 면적만 4,081㎡에 이른다.
이 나무의 기원은 아득한 백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538년(백제 성왕 16년), 웅진에서 사비(현 부여)로 도읍을 옮길 당시 조정의 좌평 벼슬을 지낸 맹씨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지정일(1982년) 기준으로 추정 수령이 약 1,000년이니, 이 전설이 사실이라면 나무의 나이는 1,500년에 육박한다.
“나라의 재난을 예고한 신령한 존재”

나무가 신령하게 여겨진 이유는 그저 오래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나무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함께 호흡해왔다.
백제가 멸망할 때, 신라가 쇠퇴할 때, 그리고 고려가 스러질 때 등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기면, 거대한 칡넝쿨이 나무를 휘감아 오르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나무를 함부로 대하면 화를 입는다는 경외심도 깊었다. 가까운 은산 지역 숭각사의 주지가 암자를 짓기 위해 이 나무의 큰 가지를 베어 가던 중 급사하였고, 그 사찰마저 폐허가 되었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전염병도 피해 간 수호신의 위엄”

이 은행나무가 자리한 ‘녹간마을’에는 근대까지 이어진 영험한 이야기가 있다. 과거 극심한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도 유독 이 마을만은 화를 면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은행나무의 보살핌 덕분이라 굳게 믿었다. 일제강점기 한 일본인이 나무를 베려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실패했다는 일화도 있다. 심지어 광복 무렵에는 남쪽을 향한 큰 가지가 부러져, 나라의 큰 변화를 예고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이 믿음은 현재진행형이다. 주민들은 지금도 매년 정월 초이튿날 나무 앞에서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다. 특이하게도 제사상에는 술 대신 나무 옆 샘물을 떠 올린다. 또한 칠월칠석에는 주민들이 함께 거름을 주는 ‘비배관리’를 하며 나무를 정성껏 보살핀다.
“천년의 금빛, 고요하게 마주하는 법”

별도의 입장료나 관람 시간제한 없이 상시 개방된다. 주차 역시 무료로 가능하다. 단, 대규모 관광지처럼 넓은 주차장이 완비된 것은 아니다. 조용한 마을 뒤편에 자리하고 있어, 마을 입구 적절한 공간에 주차하고 잠시 걸어 들어가는 편이 좋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상업 시설이나 인위적인 조형물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오롯이 천년의 세월을 버텨낸 나무 한 그루와 마주하는 순수한 경험이 가능하다.
가을의 절정기, 유명 명소의 인파를 피해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싶다면 이곳이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주말보다는 평일 오전에 방문한다면, 1,500년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은 금빛 풍경을 온전히 독차지할 수 있다.
백제의 숨결과 마을 사람들의 염원이 깃든 이 거대한 생명체 아래서, 올가을 가장 깊고 특별한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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