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남지체육공원
근대 철교가 품은 가을꽃의 바다

가을 여행의 공식은 보통 ‘아름다운 꽃밭’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만약 그 꽃밭을 감상하는 장소가 90년의 세월을 견뎌낸 근대사의 증인, 국가가 인정한 문화재 위라면 어떨까.
자동차가 사라진 낡은 철교 위에서 발아래 펼쳐진 거대한 주황빛 강을 마주하는 경험. 이곳은 단순한 출사 명소가 아니다. 경남 창녕, 낙동강 변에 숨겨진 남지체육공원은 역사와 자연이 빚어낸, 아는 사람에게만 완벽한 감동을 선사하는 특별한 시간 여행지다.
국가등록문화재 남지철교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꽃이 아닌 다리, 남지철교다.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 835-25에 위치한 남지체육공원 옆을 묵묵히 지키고 선 이 다리는 1933년, 격동의 시대에 건설되었다. 길이 391.4m. 삼각형 구조를 반복적으로 연결해 하중을 견디는 ‘트러스 구조’로 지어져, 그 자체로 근대 교량 건축의 조형미를 뽐낸다.
이 다리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문화재청은 그 가치를 인정해 2005년 5월 25일, 남지철교를 국가등록문화재 제145호로 지정했다. 한때 중서부 경남 내륙의 남북을 잇는 핵심 교통로였으나, 이제는 자동차 대신 사람들의 발걸음만을 허락하는 보행교로 변신했다.
삐걱이는 듯한 철제 바닥을 밟고 다리 중앙에 서면, 시간은 과거로 흐른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의 물결과 함께 지난 90년의 이야기가 바람 소리에 실려오는 듯하다. 바로 이 다리 위가 1만 8천 평 가을 대서사의 VIP 관람석이다.
축구장 8개 크기의 주황빛 융단

남지철교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숨이 멎는다. 공원 옆으로 드넓게 펼쳐진 낙동강 둔치, 약 59,500㎡(약 1만 8천 평)에 달하는 거대한 땅이 온통 황화코스모스의 주황빛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이는 축구장 약 8개를 합친 어마어마한 규모로,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토록 거대한 꽃의 캔버스가 탄생할 수 있었던 데는 지리적 비밀이 숨어있다. 이곳은 대한민국 제1의 강인 낙동강과 경남의 젖줄인 남강이 서로 만나는 두물머리다.

오랜 세월 두 강이 실어 나른 비옥한 퇴적물이 쌓여 자연스럽게 광활하고 평평한 둔치를 만들어냈고, 창녕군은 이 축복받은 땅에 계절마다 새로운 색을 입힌다.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가을이면 주황빛 황화코스모스와 알록달록한 백일홍이 대지를 수놓는다. 인근 함안 악양생태공원의 핑크뮬리가 아기자기하고 잘 가꾸어진 ‘정원’의 매력을 보여준다면, 이곳은 강과 바람이 빚어낸 ‘야생의 들판’ 같은 압도적인 개방감으로 방문객을 사로잡는다.
입장료도 주차비도 ‘0원’

이 모든 역사적, 자연적 가치를 품은 풍경을 즐기는 데 필요한 비용은 놀랍게도 ‘0원’이다. 남지체육공원은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지 않는다. 남지리 808번지에 위치한 주차장은 휴일에도 여유 공간을 찾기 수월할 만큼 넓고, 공원은 24시간 연중무휴로 열려 있어 누구에게나 공평한 가을의 선물을 안겨준다.
광활한 꽃밭을 걷다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면 최근 정비된 ‘맨발 황톳길’을 찾아보자. 신발과 양말을 벗고 부드러운 흙의 감촉을 느끼며 걷는 시간은 그 자체로 완벽한 치유다. 산책 후에는 입구에 마련된 세족 시설에서 발을 개끗하게 씻을 수 있는 세심한 배려까지 갖췄다.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창녕으로 떠나보자. 90년 역사의 다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축구장 8배 크기의 꽃밭이 선사하는 황홀경에 온몸을 맡겨보라.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그 어떤 여행보다 풍요로운 가을의 추억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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