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다 16,830종을 전부 보유하다니”… 한 사람이 반세기 가꾼 17만 평 수목원

푸른 서해와 울창한 숲이 맞닿은 태안 천리포수목원에서 초여름의 싱그러운 자연과 비밀스러운 정원의 정취를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천리포수목원
천리포수목원 / 사진=천리포수목원

핵심 요약

  •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은 국내 최다인 약 16,830여 분류군의 식물을 보유한 수목원으로 전체 면적의 11%인 밀러가든만 일반에 공개합니다.
  • 입장료는 성인 기준 12,000원이며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는 오후 7시까지 연장 운영하고 4~5월 성수기에는 15,000원으로 인상됩니다.
  • 비공개 구역인 목련원을 보려면 가든스테이에 숙박하고 선착순 12명만 참여 가능한 아침산책 프로그램을 신청해야 합니다.

초여름 아침, 해무가 채 걷히기 전 소나무 방풍림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유난히 느리게 움직인다. 솔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빛이 땅 위에 흩어지는 동안,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바람결에 섞여 들린다.

숲 안에 있는데 바다 냄새가 난다.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이 처음 방문자에게 건네는 첫 인사는 그런 낯선 조합이다.

589,429㎡(약 17만 8천 평)에 달하는 이 수목원의 일반 공개구역은 전체의 11%에 불과하다. 나머지 90% 가까운 면적은 연구와 보전을 위해 비공개로 유지된다. 국내 최다 식물 분류군인 약 16,830여 분류군을 보유하면서도 대부분을 열지 않는 수목원, 그 11% 안에 어떤 풍경이 담겨 있는지 들여다봤다.

1962년 부지 매입부터 시작된 미국인의 평생 정원

천리포수목원 모습
천리포수목원 모습 / 사진=천리포수목원

천리포수목원(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1길 187)은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귀화한 민병갈이 1962년 처음 부지를 매입하면서 시작됐다. 해군 정보장교로 복무하고 미 군정 재정·경제 업무를 거친 뒤 한국은행에서 일한 민병갈은 이 땅에서 인생의 두 번째 챕터를 썼다.

1970년 수목원으로 조성된 이후 그는 식생 성장을 통제하는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나무가 주인이 되는 수목원’을 철학으로 삼았다. 소나무에 송담이 타고 오르더라도 공존의 균형점을 찾아 관리하되, 소나무 재선충처럼 치명적인 병해충만 사전 방제로 차단하는 방식이다.

2002년 민병갈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유해는 수목원에 안치됐으며, 설립자의 사후인 2009년 3월 1일 비로소 일반에 공개됐다.

밀러가든의 두 연못과 초여름 노루오줌원

노루오줌원
노루오줌원 / 사진=천리포수목원

공개구역인 밀러가든(65,623㎡)은 처음부터 원예 정원으로 설계된 공간이 아니었다. 거센 해풍을 막기 위한 소나무 방풍림과 담수 공급을 위한 저수지에서 시작됐으며, 현재는 큰 연못과 작은 연못 두 곳이 밀러가든 동선의 중심이자 대표 포토 스폿으로 기능한다.

수련과 연꽃이 수면을 덮기 시작하는 초여름이면 낙우송 그늘과 어우러진 수채화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 두 연못 사이에는 오리 농법으로 관리되는 논과 개구리밥이 자라는 습지가 이어지며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특히 눈여겨볼 공간은 ‘노루오줌원’이다. 약 120분류군에 달하는 노루오줌이 흰색·분홍색·붉은색·자주색의 파스텔 톤 꽃을 피우며 6-7월에 절정을 이룬다. 해외에서 ‘아스틸베(Astilbe)’로 불리며 신부 부케에 쓰일 만큼 우아한 꽃이지만, 이름은 뿌리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에서 비롯됐다는 반전이 있다.

아침산책이 열어주는 비공개 구역, 목련집

가든스테이
가든스테이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지호

전체의 90%에 가까운 비공개 구역 중 대표적인 곳이 목련원과 그 안의 목련집이다. 이 구역은 ‘아침산책’ 프로그램을 통해 제한적으로 열린다. 가든스테이와 에코힐링센터 숙박객을 대상으로 일일 선착순 12명 규모로 운영되며, 안내 해설사와 함께 비공개 구역 일부를 탐방하는 방식이다.

가든스테이는 수목원 부지 안에 자리한 숙박 시설로, 기와집·초가집·양옥 등의 유형에 걸쳐 호랑가시나무집·벚나무집·배롱나무집·해송집·다정큼나무집·위성류집·사철나무집 등 각 숙소 이름은 주변에 심긴 수종에서 가져왔다.

목련집은 설립자 민병갈이 미국에 있는 어머니를 모셔와 함께 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겉은 기와를 얹은 한옥이지만 내부에는 서양식 욕실과 생활 설비를 갖췄다. 앞마당에는 거대한 백목련이 자라며, 목련철이 지난 계절에도 넓은잎목련 등 독특한 수목이 공간을 채운다.

운영시간·입장료·주변 명소 안내

파도리 해식동굴
파도리 해식동굴 / 사진=태안군청 오감관광

천리포수목원은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입장 마감은 오후 5시다. 여름 성수기인 7월 셋째 주 토요일부터 8월 셋째 주 일요일까지는 오후 7시까지 연장 운영하며 입장 마감도 오후 6시로 늘어난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2,000원이며 4-5월 성수기에는 15,000원으로 인상되는 시기별 차등 요금제가 적용된다. 청소년·어린이·지역주민 등 대상별 우대요금은 8,000원부터 10,000원 수준으로 운영되니 방문 전 공식 채널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차장과 화장실 등 기본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

수목원에서 남쪽으로 직선거리 약 6km, 차량으로 약 15분 거리에는 파도리 해식동굴이 있다. 썰물 때에만 접근 가능한 해식동굴 2개를 배경으로 서해와 일몰을 촬영할 수 있어 인근 대표 출사지로 꼽히며, 갯바위를 지나야 하는 만큼 미끄럼 방지 신발 착용과 물때 확인이 필수다.

바다 조망 천리포수목원
바다 조망 천리포수목원 / 사진=천리포수목원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한 사람이 한 땅에 심고 가꿔온 결과물이 589,429㎡라는 숫자로 쌓였다. 공개된 11%는 그 노력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서도 바다 조망과 습지, 초여름 꽃밭과 연못이 서로 이어지며 하나의 완결된 풍경을 이룬다.

노루오줌원의 절정이 6-7월인 만큼 지금이 방문 적기다. 가든스테이 숙박을 더하면 새벽 방풍림 산책과 아침산책 프로그램을 통해 비공개 구역까지 걸어볼 수 있어, 당일치기로는 닿지 않는 수목원의 다른 층위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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