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잔도 걷는 트레킹 코스

한때 철원이라는 지명은 남북 분단의 현실과 전쟁의 상흔을 먼저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지금, 그 땅의 가장 강력한 서사는 수십만 년 전 지구의 역동적인 활동이 남긴 거대한 유산으로부터 다시 쓰이고 있다. 신생대 제4기, 뜨거운 용암이 식으며 만들어낸 수직의 현무암 기둥 ‘주상절리’가 그 주인공이다.
이 장엄한 협곡을 따라 조성된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개장 후 누적 방문객 200만 명을 넘어서며, 철원을 찾는 발길의 목적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이곳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닌, 땅의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하는 지질학적 순례길이다.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

트레킹의 백미로 꼽히는 3.6km 길이의 드르니코스는 깎아지른 절벽 허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잔도(棧道)’에서 그 진가를 드러낸다. 발아래로는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을, 양옆으로는 거대한 병풍처럼 도열한 주상절리 협곡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는 구간이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시야를 압도하는 현무암 절벽의 질감과 수직의 조형미는 경외감마저 자아낸다.
이 길의 존재 덕분에 한탄강 주상절리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닌, 직접 그 품에 안겨 호흡할 수 있는 체험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이곳의 성공은 철원의 다른 명소들을 재조명하며, 이제는 철원 가볼만한 곳 목록의 최상단을 차지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잔도를 따라 걷는 여정의 절정은 협곡을 가로지르는 ‘주상절리교’에서 맞이하게 된다. 다리 중앙 바닥 일부를 투명한 강화유리로 마감해, 마치 강물 위 허공을 걷는 듯한 짜릿한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다.
안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을 내디딜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이 짧은 구간은, 한탄강 주상절리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의 스릴로 방문객들의 기억에 각인된다. 강물이 발밑으로 흐르는 비현실적인 풍경은 이곳을 단순한 통로가 아닌,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이자 잊지 못할 포토존으로 기능하게 한다.

드르니코스의 종착점인 ‘드르니 스카이전망대’는 이 여정의 화룡점정이다. ‘들판’을 의미하는 철원 방언 ‘드르니’라는 이름처럼, 전망대는 방문객을 장엄한 풍경의 한가운데로 이끈다. 절벽 끝에서 13m가량 돌출된 스카이워크 형태의 구조물에 서면, 수십만 년 전 용암이 흘러 형성된 광활한 철원평야와 그 위를 굽이치는 한탄강의 물줄기가 한눈에 펼쳐진다.

특히 해 질 녘, 붉은 노을이 현무암 절벽을 물들이는 풍경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 특별한 경험을 위한 한탄강 주상절리길 입장료는 성인 기준 10,000원이지만, 이 중 5,000원은 지역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철원사랑상품권으로 환급되어 방문의 의미를 더한다.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걷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곳은 더 이상 DMZ 안보 관광의 배경이 아닌, 유네스코가 인정한 살아있는 지질학 교과서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했다.
수십만 년 전 지구의 역동적 활동이 빚어낸 흔적을 따라 걸으며, 분단의 상처를 품었던 땅이 어떻게 위대한 자연유산으로 거듭났는지 목격하는 경험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
잔도 위에서 느꼈던 아찔함과 전망대에서 마주한 평화로운 대지의 풍경은, 철원이라는 공간이 품은 다층적인 매력을 오롯이 증명한다. 단순한 트레킹을 넘어, 땅과 시간이 건네는 깊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은 이들에게 이곳은 더할 나위 없는 목적지가 된다.

















자연에 간섭을 최소로 해야된다는
개인으로 눈에 보이는 풍광도 좋지만
한탄하며 썩고 있는 한탄강 수질에도
신경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