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 톤 물이 만든 기적”… 부모님 손잡고 걷기 딱 좋은 충청도 호수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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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떠오르는 충청권 힐링 명소

청남대 대청호 전경
청남대 대청호 전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강윤구

잔잔한 수면 위로 부드러운 능선의 야트막한 산들이 병풍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짙푸른 물빛은 하늘을 머금고, 그 위로 백로 한 마리가 우아하게 날갯짓하며 정적을 가른다.

언뜻 수만 년의 세월이 빚어낸 태고의 자연처럼 보이는 이 서정적인 장면은, 사실 1980년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금강의 도도한 물길을 가로막으며 탄생한 인공의 산물이다.

한반도에서 세 번째로 큰 이 인공호수는 어떻게 차가운 공학적 필요성을 넘어, 수많은 생명과 사람들의 일상을 품는 거대한 생태계이자 문화적 자산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그 거대한 침묵 속에 담긴 이야기는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

대청호

청남대 대청호
청남대 대청호 / 사진=ⓒ한국관광공사 강윤구

1975년, 4대강 유역 종합개발계획의 핵심 사업으로 대청댐의 첫 삽이 떠졌다. 당시 금강 유역이 겪던 만성적인 홍수와 가뭄은 지역의 큰 숙제였다. 5년의 대공사 끝에 높이 72m, 길이 495m의 거대한 댐이 완공되자, 그 뒤편으로 15억 톤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물이 차오르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수몰민의 아픔을 딛고 탄생한 대청호의 제1목표는 명확했다. 범람하는 강을 다스리고, 대전과 청주를 비롯한 충청권의 도시에 연간 13억㎥의 깨끗한 생명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 이 공학적 결단은 실제로 유역의 치수(治水) 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지역 산업 발전과 시민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굳건한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댐의 건설은 계획된 효용을 넘어선 예상치 못한 선물을 함께 안겨주었다. 바로 80km에 달하는 구불구불한 물길과 72.8㎢의 드넓은 수면이 빚어내는 대청호의 빼어난 경관이었다.

대청호
대청호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청호의 심장부인 대청댐 정상은 그 거대한 규모와 이중적 매력을 동시에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댐 상부에 마련된 폭신한 재질의 보행로를 걷다 보면, 한쪽으로는 산 그림자를 품은 채 미동도 않는 광활한 대청호가 있다.

다른 한쪽으로는 댐 수문을 통과해 다시 힘차게 뻗어 나가는 금강 하류의 역동적인 모습이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곳은 인간의 기술이 자연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공존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바로 옆에는 1998년 문을 연 대청댐 물문화관이 자리한다. 물의 소중함과 대청호의 역사를 알기 쉽게 풀어내는 교육의 장인 이곳의 백미는 단연 전망대다.

2층 옥상과 3층 탑 모양의 전망대에 차례로 오르면, 시시각각 변하는 햇살에 따라 물빛을 달리하는 대청호 호수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시관람은 무료이며, 방문 계획이 있다면 대청댐 물문화관 운영시간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매주 월요일과 법정공휴일은 휴관하며,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대청호 전경
대청호 전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청호는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가호리에 위치하며, 대전광역시,옥천군, 보은군에 걸쳐 있다. 특히 충북 옥천군 군북면 일대는 마치 신선이 노닐 법한 비경들을 품고 있다.

그중 으뜸으로 꼽히는 부소담악은 약 700m에 걸쳐 물 위로 용의 등뼈처럼 솟아난 기암절벽으로, 대청호가 아니면 결코 볼 수 없는 특별한 풍경을 자아낸다.

청풍정 대청호
청풍정 대청호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지호

아이러니하게도 댐으로 인해 수위가 높아지면서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난 이 절경은, 인공의 변화가 빚어낸 자연의 예술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옥천 가볼만한 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인근의 천상의정원 수생식물학습원은 또 다른 형태의 공존을 보여준다. 대청호 한가운데 자리한 이 아름다운 호수 정원은 단순한 관람 시설을 넘어, 물을 보전하고 그 생태적 가치를 직접 체험하며 배우는 살아있는 교실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대청호가 단순한 물그릇이 아닌, 수많은 생명을 품고 키워내는 어머니의 품임을 실감하게 된다.

국가생태탐방로 조성

대청호
대청호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청호는 완성된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충북 청주시는 총사업비 72억 원을 투입해 2027년까지 대청호반의 속살을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국가생태탐방로’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대상 구간은 문의면 미천리에서 문의대교에 이르는 길로, 2km의 수변 데크길을 신설하고 기존 산책로를 정비하여 누구나 안전하고 쾌적하게 호수의 고즈넉함을 누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는 대청호의 가치를 기능적, 경관적 차원을 넘어 국가적 생태 자산으로 격상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청주시 관계자는 “국가생태탐방로가 조성되면 시민들이 고즈넉한 대청호반을 걸으며 더욱 풍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하며, 새로운 명소의 탄생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대청호 오리
대청호 오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청호는 거대한 댐 건설이라는 인간의 공학적 결단이 어떻게 새로운 생태 및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고, 시간과 함께 성숙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다.

대전과 충청권의 생명줄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반세기 가까이 충실히 수행하면서, 동시에 수려한 경관과 다채로운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모두의 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

부소담악의 원시적 아름다움부터 다가올 국가생태탐방로의 미래 비전까지, 대청호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의 물줄기처럼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살아있는 유산이다. 그 거대한 침묵은 오늘도 우리에게 자연과 인간의 상생이란 무엇인지, 그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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