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호유적공원
가을 노을 품은 핑크뮬리 언덕

가을이면 어김없이 SNS 피드를 점령하는 분홍빛 물결, 핑크뮬리.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명소는 인파로 발 디딜 틈 없고, 사진 한 장을 위해 기나긴 줄을 서야 하는 피로감만 남기기 일쑤다.
만약 이 가을, 사람에 치이지 않고 오롯이 분홍빛 낭만을 즐기며 그 이상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 여기, 화려한 풍경 속에 수천 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대구의 비밀스러운 장소가 있다.
“초례산 아래, 청동기 역사를 품고 피어난 분홍빛 물결”

동호유적공원은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 1139에 자리한 특별한 공간이다. 이곳이 다른 핑크뮬리 명소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이름 속 ‘유적’이라는 두 글자에 담겨있다.
이 공원은 신서혁신도시를 건설하던 중 발굴된 집터, 무덤 등 청동기 시대의 생활 유적을 원래 위치에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살아있는 역사 현장이다. 지금 우리가 핑크뮬리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바로 그 땅이 수천 년 전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나면 눈앞의 풍경은 한층 더 깊이 있게 다가온다. 굳건하게 버티고 선 초례산을 배경으로,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핑크뮬리 군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특히 군락 한가운데 외로이 서 있는 ‘나 홀로 나무’는 이곳의 상징적인 포토존으로, 분홍빛 바다 위 작은 섬처럼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백이라는 꽃말처럼, 설렘 가득한 가을 오후”

핑크뮬리의 학명은 ‘뮬렌베르기아 카필라리스’로 ‘모세혈관 같은’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가늘고 섬세한 줄기들이 모여 안개 같은 몽환적 풍경을 만들어내는데, 꽃말이 ‘고백’인 이유도 이처럼 설레는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동호유적공원은 다른 곳보다 비교적 방문객이 적어, 이 부드러운 분홍빛 안개 속에서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가을의 감성을 누리기에 최적의 장소다.
특히 이곳의 진가는 해가 저무는 시간에 발휘된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주황빛 햇살이 핑크뮬리를 관통하며 세상의 모든 따뜻한 색감을 한곳에 모아놓은 듯한 황홀한 풍경이 연출된다. 복잡한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주하는 이 평화로운 일몰은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특별한 위로와 치유를 선물한다.

이 특별한 경험을 위해 알아둬야 할 점이 있다. 공원은 24시간 무료로 개방되지만, 전용 주차장이 없어 인근 도로의 갓길을 이용해야 한다. 대중교통으로는 대구 1호선 안심역에서 내려 30분가량 걸어야 하므로 가급적 자가용 이용을 추천한다.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곳을 찾는다면, 당신은 단순한 사진 한 장 이상의 것을 얻어갈 수 있다. 수천 년의 시간 위에서 만나는 찰나의 가을. 올가을엔 동호유적공원에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당신만의 깊이 있는 인생 사진을 남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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