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이 열광하는 산책길”… 1,300그루가 만든 5km 메타세쿼이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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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세월이 만든 담양의 상징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라남도 담양은 흔히 대나무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역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상징이 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들이 만들어낸 장엄한 초록빛 동굴, 바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다.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이 길은 한 지도자의 혜안과 개발의 논리 앞에서 소중한 것을 지켜내려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이 빚어낸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다.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전경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전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라이브스튜디오

이야기의 시작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담양군수였던 김기회는 군의 어려운 재정 여건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국도 24호선의 담양읍부터 금성면 원율삼거리에 이르는 약 5km 구간에 5년생 메타세쿼이아 묘목 1,300그루를 심은 것이다.

당시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이때 심은 작은 묘목들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국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길이 되었다. 마치 거인국의 근위병들이 사열하듯 도열한 나무들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질서와 생명력을 뿜어낸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 사진=ⓒ한국관광공사 오경택

시간이 흘러 2000년대 초, 이 아름다운 길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 국도 24호선 확장 계획이 발표되면서, 도로 위에 서 있던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모두 베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개발의 논리 앞에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온 가로수는 한낱 장애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담양 군민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거리숲 지키기’ 운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고, 이들의 염원은 결국 길을 지켜냈다. 기존 메타세쿼이아길을 온전히 보존하는 대신 그 옆으로 새로운 우회도로가 건설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걷는 고즈넉한 산책로는 바로 이처럼 시민들의 힘으로 지켜낸 옛 국도의 흔적인 셈이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 사진=ⓒ한국관광공사 라이브스튜디오

한때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던 이 길은 이제 온전히 사람들의 차지가 되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주인공이 행복한 표정으로 운전하던 바로 그 장면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여름의 절정, 짙푸른 잎사귀가 겹겹이 쌓여 만든 터널 아래에 서면 왜 이곳이 ‘꿈의 드라이브 코스’로 불렸는지 실감하게 된다. 잠깐의 산책을 위해 필요한 성인 기준 2,000원의 입장료는 이 유산을 가꾸고 보존하는 데 쓰인다. 길을 걷다 보면 코끝을 스치는 나무 특유의 향기는 덤이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죽녹원 등과 함께 담양의 자연을 대표하는, 빼놓을 수 없는 담양 가볼만한 곳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 사진=ⓒ한국관광공사 라이브스튜디오

담양 메타세쿼이아길은 단순한 가로수길이 아니다. 50년 전 한 사람의 선견지명으로 시작되어, 개발의 위협 속에서 다수의 노력으로 지켜낸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한때는 스쳐 지나가는 국도였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 머무는 목적지가 되었다.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들의 웅장함 속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과거의 결정이 현재에 얼마나 큰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는 것의 중요성을 함께 느끼게 된다. 이 길은 앞으로도 시간의 깊이를 더하며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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