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된 배롱나무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겨울에 더 아름다운 무료 설경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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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명옥헌
눈 내린 정원의 고요한 미학

명옥헌 겨울
명옥헌 겨울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2월의 담양은 산자락 곳곳에서 마지막 가을빛을 털어내고 있다. 그 깊은 골짜기 한가운데, 상단과 하단 두 개의 연못을 품은 조선 중기 정원이 자리한다. 명승 제58호로 지정된 이 공간은 여름 백일홍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정원의 본래 형태는 겨울에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눈이 내린 직후 찾아가는 이들만이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고요함이 담양 명옥헌 원림의 진짜 매력인 셈이다. 화려함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조선 선비가 꿈꾼 정원의 뼈대, 그 정제된 아름다움이다.

담양 명옥헌

담양 명옥헌 설경
담양 명옥헌 설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양성영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후산길 103에 위치한 명옥헌은 조선 중기 선비 오희도의 처소였던 곳을 그의 아들 오이정이 조성한 별서 정원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수령 600년의 은행나무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나무는 인조반정(1623년) 이전, 능양군이었던 시절 인조가 오희도를 만나러 오면서 말을 맸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계마행(繫馬杏)’이라 불린다. 당시 인조는 인재를 구하던 시기였고, 명곡이라 불리던 오희도를 찾아 이곳까지 온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성리학자 송시열이 제자 오기석을 위해 ‘명옥헌’이라는 명칭을 직접 지어주고 바위에 글씨를 새겼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어, 이 정원은 단순한 풍경 이상의 역사적 깊이를 품고 있다. 한 그루 나무 앞에서 조선 왕실과 선비 문화, 성리학의 시간이 겹쳐지는 셈이다.

색이 빠지면서 드러나는 공간의 선

담양 명옥헌 겨울 풍경
담양 명옥헌 겨울 풍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겨울 명옥헌의 아름다움은 화려함의 제거에서 비롯된다. 여름철 100년 이상 된 배롱나무 20여 그루가 만드는 붉은 물결과 달리, 겨울에는 모든 색이 빠지면서 정원의 뼈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상단 연못은 인공석축 없이 파낸 우물 같은 형태로, 하단 연못은 자연 암반 위에 얇은 둑을 둘러 만든 구조가 눈 덮인 풍경 속에서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이 덕분에 조선 중기 정원의 본래 형태를 가장 정제된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셈이다.

눈 내린 날의 명옥헌
눈 내린 날의 명옥헌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반면 여름에는 배롱나무의 화려함에 가려졌던 정자와 소나무, 연못의 관계가 겨울에는 한눈에 읽힌다. 얼어붙은 연못은 거울처럼 하늘과 나뭇가지를 반사하며, 정자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선사한다.

눈이 쌓인 정자 지붕의 곡선과 소나무 가지 위로 내려앉은 하얀 눈송이가 만드는 조화는 사진작가들이 겨울마다 이곳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겨울 방문 팁과 주변 코스

명옥헌 연못 풍경
명옥헌 연못 풍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명옥헌은 입장료와 주차비 모두 무료이며,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중무휴로 개방된다. 마을 입구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도보로 5분 정도 걸으면 정원에 닿을 수 있다. 겨울 방문 시에는 눈이 내린 직후 찾는 편이 좋으며, 새벽부터 오전 9시 직후 또는 해질녘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정자 주변 길이 결빙될 수 있어 미끄럼 방지 신발과 방한용품은 필수다. 한편 여름 배롱나무 시즌과 달리 겨울에는 방문객이 적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명옥헌에서 차로 10분 거리에는 조선 민간정원의 대표작인 소쇄원이, 5분 거리에는 대나무 숲길로 유명한 관방제림이 자리해 함께 둘러보기 좋다.

명옥헌 연못
명옥헌 연못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명옥헌은 인조와 오희도, 송시열이라는 세 시간의 층위를 동시에 품은 조선 정원이다. 눈 내린 정자 지붕과 거울처럼 얼어붙은 연못, 그 위로 드리운 소나무 가지가 만드는 풍경은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주인공 이영과 라온이 처음 마주한 장소로도 알려진 만큼 방송 이후 더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 속에서 조선 정원의 본질을 만나고 싶다면, 눈이 남아 있는 지금 이곳으로 향해 겨울만이 보여주는 정제된 아름다움을 걸어보길 권한다. 화려함이 아닌 고요함으로 완성되는 정원의 미학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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