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은 물론, ‘이것’까지 본다”… 입장료·주차비 무료로 가을 즐기는 천년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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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은해사
추사 김정희 작품과 같이 즐기는 단풍

은해사 단풍 전경
은해사 단풍 전경 / 사진=영천 문화관광

11월, 단풍의 마지막 빛이 팔공산 능선을 붉게 물들이는 계절. 이때, 입장료나 주차비 걱정 없이 고요한 산사의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천년 고찰이 있다.

신라 헌덕왕 때 창건된 영천 은해사는 2022년 4월부로 문화재 관람료가 전면 폐지되며, 누구에게나 열린 사찰이 되었다. 단풍과 소나무숲,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흔적이 어우러진 이곳은 가을의 끝자락을 보내기 가장 좋은 장소 중 하나다.

영천 은해사

은해사 모습
은해사 모습 / 사진=영천시 공식 블로그 박은환

은해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신라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왕명을 받아 창건한 ‘해안사(海眼寺)’가 그 시작이었다.

왕위에 오른 헌덕왕이 조카 애장왕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절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후 여러 차례의 화재와 전란을 겪었으나, 1849년 중창불사로 오늘날의 웅장한 사찰로 다시 태어났다.

사찰의 이름은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안개가 피어오를 때면, 사찰을 감싸는 풍경이 은빛 물결처럼 출렁인다.

현재 은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로, 39개의 말사와 8개의 암자를 관장하며 오랜 세월 동안 불교 수행의 중심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걸음마다 경건해지는 1.3km

은해사 풍경
은해사 풍경 / 사진=영천시 공식 블로그 박은환

은해사 여행은 주차장부터 시작된다. 경북 영천시 청통면 은해사로 300에 도착하면, ‘금포정 소나무길’이라는 이름의 길이 펼쳐진다.

이 1.3km의 숲길은 분수광장에서 사찰까지 이어지는 경건한 산책 코스로, ‘살생을 금한다’는 뜻을 품은 이름답게 길 위의 공기가 유난히 맑고 고요하다.

수백 년 된 소나무들이 터널을 이루며 하늘을 가린다. 발아래로는 낙엽이 깔리고, 머리 위로는 단풍이 부드럽게 흩날린다. 팔공산의 다른 사찰들보다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유다.

이 길은 최근 ‘영천 9경’ 중 하나로 선정된 ‘팔공산 은빛 둘레길’의 첫 번째 코스로 이어지며, 생태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새소리와 바람소리만이 귀를 채운다.

붓끝에 깃든 사찰의 숨결

은해사와 단풍나무
은해사와 단풍나무 / 사진=영천시 공식 블로그 박은환

은해사의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대웅전과 누각에 걸린 편액들이다. 이 편액들은 모두 조선 후기의 거장, 추사 김정희의 친필이다.

1849년 중창 당시 은해사에 머물던 그는 이곳에 다섯 점의 글씨를 남겼다. 대웅전과 보화루, 불광각, 불광암, 일로향각의 편액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특히 보화루에 걸린 ‘은해사(銀海寺)’ 편액은 추사체의 완숙한 힘과 자유로운 선이 잘 드러난 대표작으로 꼽힌다. 힘 있게 뻗은 획과 고요하게 흐르는 곡선이 공존하는 글씨 앞에 서면, 그가 남긴 예술적 기운이 천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이외에도 불광각의 편액에는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찰을 둘러보며 추사의 작품 하나하나를 찾아보는 것도 은해사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깊은 가을의 하루를 채우는 법

은해사
은해사 / 사진=영천시 공식 블로그

사찰의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작지만 알찬 공간이 나타난다. 바로 성보박물관이다. 무료로 개방되는 이 박물관은 은해사의 긴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으로, 불화와 유물, 사찰의 변천사를 차분히 담아낸다.

운영시간은 동절기(10월~3월) 기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이며,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명절 연휴에는 휴관한다. 조용한 오후 시간대에 방문하면,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과 함께 사찰의 고요한 기운을 한껏 느낄 수 있다.

한편, 고즈넉한 산사의 밤을 체험하고 싶다면 템플스테이에 참여해보자. 특히 2025년 11월 한 달간은 한국관광공사와 함께하는 ‘여행가는 가을 행복두배 템플스테이’가 진행된다.

1박 2일 프로그램을 3만 원의 참가비로 이용할 수 있으며, 참선과 명상, 발우공양 등 다양한 불교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이 시기 은해사는 단풍이 절정을 이루며, 차분한 명상 속에서 붉게 물든 팔공산의 풍경을 바라보는 경험은 그 어떤 여행지에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순간이 된다.

은해사 단풍
은해사 단풍 / 사진=영천시 공식 블로그 박은환

팔공산의 가을은 깊지만 덧없다. 금포정 소나무길의 향기로운 공기, 천년의 역사를 품은 전각, 추사 김정희의 힘 있는 글씨, 그리고 사찰의 고요한 명상까지. 이 모든 것을 단 한 번의 여행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은해사다.

입장료와 주차비가 없는 열린 사찰,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단풍이 스러지기 전, 마지막 가을을 천년 고찰의 품에서 보내보자.

붉게 물든 숲길 위에서 마음이 비워지고, 세상이 잠시 멈춘 듯 고요해지는 순간, 비로소 진짜 가을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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