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00m인데 왜 이렇게 몰려?”… 한 장의 사진으로 유명해진 은행나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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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의동마을 은행나무길
100미터 길 위에 피어난 가을 명화

거창 의동마을 은행나무
거창 의동마을 은행나무 / 사진=거창관광

가을이 무르익으면 대한민국은 거대한 갤러리가 된다. 하지만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렌즈를 향하는 곳은 따로 있다. 광활한 국립공원도, 천년 고찰도 아닌, 경남 거창의 이름 없는 마을에 숨겨진 100미터 남짓한 짧은 길 이다.

파란 슬레이트 지붕 위로 황금빛 은행잎이 눈처럼 쌓인 동화 속 풍경. 이 마법 같은 ‘한 장’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매년 순례길에 오른다. 그러나 이 풍경이 단순한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사진 한 장이 피운 기적, 그리고 그 기적을 지켜내는 보이지 않는 손길의 비밀을 공개한다.

단 한 장의 사진, 잠들던 마을을 깨우다

의동마을 은행나무
의동마을 은행나무 / 사진=거창관광

이야기의 무대는 거창 의동마을 은행나무길이다. 정확한 주소는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의동1길 일원이지만, 낯선 방문객이라면 내비게이션에 ‘의동마을회관’(의동1길 35)을 입력하는 편이 현명하다. 2011년 이전까지 이 길은 마을 사람들만 오가는 평범한 골목길이었다. 모든 것을 바꾼 것은 바로 그해 열린 ‘제1회 거창관광 전국사진공모전’이었다.

한 사진작가가 출품한 의동마을의 가을 풍경 사진이 입상작으로 선정되면서, 고요하던 마을은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진 속 완벽한 황금빛 터널과 서정적인 시골 풍경은 전국의 사진 애호가들을 매료시켰고, SNS를 통해 입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그렇게 평범했던 100미터의 길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을 출사 ‘성지’로 거듭났다.

규모가 아닌 밀도, 100미터의 미학

거창 의동마을 은행나무길
거창 의동마을 은행나무길 / 사진=거창관광

홍천이나 아산의 은행나무숲이 광활한 규모로 우리를 압도한다면, 의동마을 은행나무길의 승부수는 ‘밀도’와 ‘조화’에 있다. 약 100미터의 짧은 길 양옆으로 수십 그루의 은행나무가 빈틈없이 도열하며 완벽한 ‘황금빛 터널’을 이룬다. 절정기에는 발목까지 푹 잠길 만큼 노란 잎이 융단처럼 깔려, 방문객들은 현실을 잊고 그림 속을 걷는 듯한 황홀경에 빠진다.

이곳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것은 단연 길 한편에 자리한 낡은 창고 건물이다. 촌스럽다고 여겨질 법한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은 이곳에서 마법을 부린다. 선명한 노란색과 강렬한 파란색의 보색 대비는 그 어떤 인공적인 조형물보다 더 강렬한 예술적 프레임을 만들어낸다.

전문 장비가 없어도,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누구나 전문가 수준의 작품 사진을 건질 수 있는 이유다. 이곳의 풍경은 거대한 자연이 아닌, 인간의 삶과 자연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빚어낸 한 폭의 수채화에 가깝다.

‘깨끗한 마을’의 보이지 않는 손길

거창 은행나무 명소
거창 은행나무 명소 / 사진=거창 공식블로그 배인주

수많은 인파가 다녀감에도 의동마을이 매년 한결같은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답은 마을 주민들의 남다른 자부심과 노력에 있다. 거창 의동마을은 경상남도가 주관하는 ‘깨끗한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여러 차례 최우수 마을로 선정된 이력이 있다.

마을 주민들에게 이 은행나무길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정성껏 가꾸고 지켜온 삶의 터전이자 자부심이다. 방문객들이 감탄하는 깨끗한 길과 정돈된 풍경은 결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심코 누리는 100미터의 황홀경 뒤에는 마을 공동체의 보이지 않는 땀과 헌신이 숨어있는 셈이다.

거창 은행나무 은행잎
거창 은행나무 은행잎 / 사진=거창 공식블로그 배인주

따라서 이곳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공식 주차장이 없으므로 마을 입구나 주변 갓길에 주차하되, 주민들의 통행에 절대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짧지만 강렬한 감동을 주는 의동마을 은행나무길은 30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이 짧은 여운을 거창의 다채로운 가을과 연결해 보자. 차로 10분 거리의 거창 사과테마파크에서 가을의 맛을, 20~30분 거리의 가조 Y자형 출렁다리나 명승 수승대에서 가을의 멋을 더하는 완벽한 여행 계획이 가능하다.

올가을, 한 장의 사진이 열어젖힌 100미터의 기적과 그 기적을 지키는 따뜻한 마음을 함께 만나러 거창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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