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 타고 폭포 지나 절벽 암자로 간다”… 61년 만에 다시 열린 경북 8경 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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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만에 열린 금오산 정상길
대혜폭포 지나 정상까지 순례길

금오산 약사암
금오산 약사암 / 사진=구미시 문화관광

경상북도 구미, 김천, 칠곡을 잇는 해발 976m의 금오산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산수화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이 산은 경북 8경 중 하나로 꼽히며, 예로부터 나라의 기운이 서린 명산으로 불렸다.

특히 산 중턱 절벽 끝에 매달린 듯 세워진 약사암은 금오산의 상징이자, 수많은 이들이 마음을 내려놓는 공간이다. 구미 시내에서 불과 10분 거리라는 접근성 덕분에 누구나 ‘하늘과 맞닿은 고요’를 찾아 이곳을 찾는다.

구미 금오산 약사암

금오산 약사암 전경
금오산 약사암 전경 / 사진=구미시 문화관광

금오산의 이름에는 신비로운 전설이 있다. 삼국시대 승려 아도가 이 산을 지나던 중, 붉게 물든 저녁하늘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金烏山)’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태양의 정기를 받은 산이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도선대사와 무학대사마저 “왕기가 서린 산”이라 칭했을 만큼 금오산은 신성한 기운의 상징이었다.

산세 또한 특이하다. 정상 부근에는 고원 분지가 펼쳐지고, 그 아래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이어진다. 이곳에는 과거 ‘성안마을’이라 불린 고지대 마을이 자리했는데, 해발 800m에 마을이 형성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끊겼지만, 그 자취는 여전히 산의 품 안에 남아 있다.

금오산 등산로
금오산 등산로 /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박성근

정상인 현월봉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인다. 북쪽으로는 구미 시내와 낙동강이, 동쪽으로는 구미국가산업단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로 이어지는 절벽에는 약사암이, 거대한 암벽에는 보물 제490호 금오산 마애보살입상이 새겨져 있어 금오산의 문화적 깊이를 더한다.

약사암은 마치 하늘에 걸린 듯 절벽 끝에 서 있다. 아래로는 천 길 낭떠러지가, 위로는 바람이 흐르는 하늘이 펼쳐진다. 그곳에 서면 구미 시내와 금오호수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낙동강이 굽이친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한 이 풍경 앞에서는 누구나 잠시 숨을 멈춘다.

금오산 가을 전경
금오산 가을 전경 / 사진=구미시 문화관광

암자 마당에는 약사전과 요사채, 그리고 절벽 아래를 감싸듯 자리한 소봉상 바위가 조화를 이룬다. 수행승들은 이곳에서 바람과 마주하며 명상에 잠겼고, 지금도 불자와 여행객들이 마음을 정화하러 찾는다. ‘절벽 끝의 암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서의 기도는 세속의 소음과 단절된 또 다른 세계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대혜폭포에서 약사암까지 오르는 길

금오산 케이블카
금오산 케이블카 / 사진=구미시 문화관광

약사암으로 향하는 여정은 단순한 등산이 아니다. ‘자연 속 순례’라 부를 만큼 경이로운 풍경이 이어진다. 대표적인 코스는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해 케이블카를 타고 해운사, 대혜폭포, 할딱고개를 지나 약사암으로 오르는 길이다. 왕복 약 3시간 반이 소요된다.

금오산 대혜폭포
금오산 대혜폭포 / 사진=구미시 문화관광

케이블카에 오르면 빨간색 곤돌라가 산허리를 가로지르며 구미의 도시와 숲을 한눈에 비춘다. 해운사에서 잠시 머물러 마음을 가다듬고, 이어지는 대혜폭포(높이 27m) 앞에서는 시원한 물줄기가 몸과 마음의 피로를 씻어낸다.

마지막 관문인 ‘할딱고개’를 지나 절벽 위 약사암에 닿는 순간, 등산객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힘들게 오를수록 그 감동은 더 깊다.

61년 만에 열린 정상

약사암
약사암 / 사진=ⓒ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박성근

한때 금오산의 정상은 일반인에게 금지된 구역이었다. 1953년 한·미행정협정(SOFA)에 따라 주한미군 통신기지가 들어서면서, 정상 일대 2만㎡가 넘는 구역이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등산객들은 헬기장까지만 오를 수 있었고, 현월봉은 ‘그리운 봉우리’로 남았다.

그러나 구미시는 10차례에 걸친 미군과의 협상을 통해 2011년 일부 부지를 반환받는 데 성공했다. 이후 2014년, 미군 시설을 철거하고 새로운 정상 표지석을 세우며 마침내 61년 만에 금오산의 정상길이 열렸다.

지금은 누구나 이곳을 걸을 수 있다. 통신시설 대신 자연이 돌아온 자리에 서면, 바람이 지나가던 흔적만 남아 있다. 도시의 소음이 멀어지고, 오직 낙동강의 물빛과 멀리 펼쳐진 들녘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오르는 이들도 많다. 태양이 구름을 뚫고 떠오를 때, 금빛으로 물드는 산 능선은 왜 이곳이 ‘태양의 산’이라 불렸는지를 다시금 증명한다.

구미 시민의 일상 속 명산

금오산 도립공원
금오산 도립공원/ 사진=구미시 문화관광

1970년 국내 최초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금오산은 구미의 상징이자 시민들의 일상 속 쉼터다. 입장료가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2008년을 기점으로 무료로 개방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다.

등산로는 총 4곳으로, 가장 대표적인 코스는 해운사 방면이다. 주차장과 금오랜드, 케이블카가 가까워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인기가 높다. 법성사 코스는 조용하고 숲길이 깊어 사색을 즐기는 등산객들이 찾는다. 북삼고등학교 방면은 완만한 경사로 체력 부담이 덜하고, 지경마을 코스는 김천과 칠곡의 경계를 따라 걷는 묘한 매력이 있다.

금오산 도선굴
금오산 도선굴 / 사진=구미시 문화관광

대중교통 접근성도 좋다. 구미역에서 27번 버스를 타면 금오산 입구까지 바로 갈 수 있으며, 지경마을 방면으로는 구미 11-1번과 김천 13-9번 등 여러 노선이 이어진다. 구미 시내에서 불과 10분 거리, 주말이면 케이블카를 타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선다.

이처럼 금오산은 ‘도시 가까운 명산’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산 아래에는 금오호수공원과 금오랜드가 자리해 가족 단위 나들이객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폭포,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어우러져 사계절 내내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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