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분산성, 600년 성벽을 걸으며 만나는 설경과 낙동강 석양

가야테마파크에서 도보 15분, 40분이면 한 바퀴 도는 산성 트레킹

김해 분산성 설경
김해 분산성 설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송희재,AI

석양이 김해평야를 물들이는 시간, 해발 382m 능선 위로 오래된 성벽이 띠처럼 이어진다. 돌 하나하나에는 고려 말 왜구의 칼날을 막아낸 흔적이, 무너진 틈새로는 임진왜란의 상흔이 스며 있다.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땅을 지켜온 돌담은 지금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벽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은 압도적이다. 김해 시내와 드넓은 평야, 그 너머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맑은 날이면 수평선 끝 남해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고려 우왕이 이곳에 성을 쌓으라 명한 이유가, 조선 고종이 다시 성을 일으켜 세운 까닭이 단번에 이해되는 순간이다.

고려 우왕 3년,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테뫼식 산성

김해 분산성 모습
김해 분산성 모습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로 405번안길 210-162에 위치한 김해 분산성은 분성산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이다. 1377년 고려 우왕 3년, 김해부사 박위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한 이 성은 김해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한다.

산 정상을 따라 띠를 두른 듯 성벽이 이어지며, 남북으로 두 개의 문지와 서편 암문을 갖춘 구조는 방어와 출입을 동시에 고려한 설계였던 셈이다. 삼국시대 기원으로 추정되는 이 산성은 가야국의 흔적 위에 고려의 돌을 쌓아 올린 역사의 지층이다.

총길이 929m, 높이 3~4m로 복원된 성곽의 위용

김해 분산성 겨울
김해 분산성 겨울 / 사진=한국관광공사 송희재,AI

성벽은 총길이 929m에 이르며, 높이는 3~4m, 평균 폭은 8m로 견고하게 쌓아 올려졌다. 현재 서북쪽 30m 구간만이 원형을 간직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2000년대 초 김해시의 150억 원 종합정비계획에 따라 복원된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파괴된 후 약 280년간 방치되었던 성은 1871년 조선 고종 8년, 부사 정현석에 의해 개축되었고, 현대에 들어 다시 한번 모습을 되찾았다.

성벽 곳곳에는 우물지와 건물터가 남아 있으며, 1999년 복원된 봉수대가 정상부 가장 높은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

흥선대원군 친필 만장대와 허왕후를 기리는 해은사

김해 분산성 성곽
김해 분산성 성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봉수대 뒷편 바위에는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새긴 ‘만장대’ 각자가 선명하다. ‘만 길이나 되는 높은 대’라는 뜻으로, 이곳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 대원군의 낙관까지 함께 새겨져 있다.

분산성 정상에는 해은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 사찰은 가락국 허왕후가 바다 너머에서 온 것을 기리기 위해 창건되었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수로왕과 허왕후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승병이 주둔하며 왜적에 맞섰던 공간이기도 하다.

충의각에는 박위의 사적비와 흥선대원군 불망비 2기, 정현석 불망비가 보존되어 있어 분산성 수축의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연중무휴 무료 개방, 도보 15분이면 닿는 접근성

분산성 봉수대
분산성 봉수대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분산성은 연중무휴로 상시 개방되며 입장료는 없다. 가야테마파크 주차장에서 도보로 10~15분이면 성벽 입구에 도착하고, 성벽을 한 바퀴 도는 데는 약 40분이 소요된다.

경사가 완만해 운동화만 갖춘다면 누구나 오를 수 있으며, 일몰 시간대인 계절별 16시~18시 30분 사이에 방문하면 김해평야와 낙동강을 붉게 물들이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부산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1시간, 김해시청에서는 10~15분 거리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나다. 산 아래 가야테마파크에서는 가야 역사 전시를 관람할 수 있으며, 수로왕비릉과 봉황대 고분군까지 연계하면 가야 역사 벨트를 한 번에 체험할 수 있다.

분산성 겨울 모습
분산성 겨울 모습 / 사진=한국관광공사 송희재,AI

분산성은 고려의 돌 위에 조선의 시간을 쌓아 올린 공간이다. 929m 성벽이 두른 능선 위에서 김해평야와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순간, 600년 전 이 땅을 지키려 했던 이들의 눈빛이 느껴지는 편이다.

한반도 외침의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낸 성벽을 따라 걷고 싶다면, 해질 무렵 분산성으로 향해 석양 속 김해를 눈에 담아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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