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은하사, 가락국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신어산 고찰

산자락을 오르는 돌계단 위로 이른 봄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는다. 겨울이 물러나고 나뭇가지마다 새순이 돋아나는 계절, 신어산 중턱에는 고요한 기운이 가득하다. 도심의 소음이 산기슭에서 멈추고, 사찰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시간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이 사찰은 가락국 수로왕 시대 장유화상이 창건했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장유화상은 허황옥의 오빠로 전해지며, 남방불교 전래와 얽힌 설화가 천년 넘게 이어져 왔다. 임진왜란의 전화로 한차례 전소되었지만 1629년 중수를 시작으로 수백 년에 걸쳐 복원되며 오늘에 이른다.
두 건의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를 경내에 간직한 이 산사는, 조선 건축의 정수와 32점 불교 벽화가 한 지붕 아래 공존하는 보기 드문 공간이다.
신어산 서쪽 자락에 자리한 천년 고찰의 역사

은하사(경남 김해시 신어산길 167, 삼방동)는 신어산(神魚山) 서쪽 중턱에 자리한 산지형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의 말사다. ‘신령스런 물고기’를 뜻하는 신어산이라는 이름은 수로왕릉의 쌍어 문양, 그리고 은하사 대웅전 수미단의 쌍어 문양과 깊이 연결되며 이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을 이룬다.
창건 설화는 가락국 수로왕 시대 장유화상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역사적 고증이 어려운 전설로 전해진다. 원래 서림사(西林寺)라는 이름이었다가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후, 1629년(인조 7) 중수를 거쳐 은하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1649년(효종 1)과 1801년(순조 1) 두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2003년에는 전면 해체 보수가 진행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238호, 대웅전 건축의 정수

대웅전은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된 조선 시대 목조 건축물이다. 단층 맞배지붕에 다포계(내외 3출목) 구조를 갖추었으며, 정면 3칸·측면 3칸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평면이 일반 대웅전과 다른 독특한 비례감을 만든다.
외부 공포에는 연꽃과 봉황 머리 장식이 촘촘히 새겨져 있으며, 쇠서받침에 조각된 연꽃 문양이 처마 아래를 따라 이어진다. 내부 수미단에는 허황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쌍어 문양이 조각되어 있어 가락국의 역사적 흔적을 간직한다.
주존불은 일반 대웅전과 달리 관음보살상으로, 석가모니후불탱과 신중탱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범종루인 화운루는 나무를 다듬지 않고 원형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한 자연재 건축이 인상적이며, 응진전의 나한상은 흰색으로 채색되어 다른 사찰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32점 조선 불화와 삼보 거북이 새겨진 목어

대웅전 내외벽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2호(2003년 10월 지정)로 지정된 벽화 32점이 전시되어 있다. 삼불회도·아미타내영도·보살상·신장상·나한상·도인상·모란 등 조선 후기 불교 회화의 다양한 주제가 한 공간에 펼쳐진다.
다만 현재 관람객이 감상하는 벽화는 2003년 전면 해체 보수 당시 원본을 수장고로 이관한 뒤 제작한 모사본이다. 경내를 둘러보면 목어에서도 눈길을 끄는 요소를 만난다. 꼬리 부분에 불·법·승 삼보를 상징하는 머리 세 개가 달린 거북이 조각이 새겨져 있어 사찰의 상징적 의미를 더한다.
삼성각에는 칠성·독성·산신탱과 함께 장유화상 진영이 봉안되어 있어 창건 설화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또한 이 사찰은 2001년 개봉한 영화 《달마야 놀자》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으며, 당시 사용된 연못과 법당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무료 개방, 방문 전 확인 필수

은하사는 일출부터 일몰까지 연중무휴로 개방되며, 입장료와 주차비 모두 무료다. 주차는 하부 주차장에 소형차 기준 20대를 수용할 수 있으며, 차량으로 절 앞까지 진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돌계단을 통해 천천히 올라가며 사찰 분위기를 음미하는 방식을 권한다. 문의는 055-337-0101로 하면 된다. 개방시간은 계절과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어 방문 전 전화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신어산 능선을 따라 오르면 정상부의 기암괴석이 천연 나한상처럼 솟아 있으며, 산내 암자 영구암과 연계한 탐방 코스로 이어진다. 사찰을 감싼 숲길과 산세가 조화를 이루어 한 나절 산책으로도 충분히 풍성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가락국의 설화와 조선 건축, 불교 회화가 겹겹이 쌓인 이 공간은 단순한 사찰 탐방을 넘어 한반도 고대사의 한 층위를 직접 걸어 보는 경험을 준다.
봄날 신어산의 새순이 돋아나는 계절, 돌계단을 천천히 올라 경내에 닿는 순간 그 깊이가 몸으로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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