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로 이런 홍매화를 본다고?”… 한적하게 봄꽃 산책 즐기는 430년 서원

고창 도암서원
이른 봄 홍매화와 조선 유학의 흔적

도암서원 전경
도암서원 전경 / 사진=고창군,AI

이른 봄, 아직 대지가 채 깨어나지 않은 시간이 있다. 나무들이 잎을 틔우기 훨씬 전, 가지 끝에서 먼저 붉은 꽃망울을 밀어 올리는 것들이 있다. 그 작고 선명한 빛깔이 서원 돌담 위로 내려앉는 풍경은, 보는 이의 발걸음을 조용히 붙들고는 한다.

전북 고창 공음면의 한 마을 안쪽, 오래된 서원 마당에 홍매화가 피어난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이 나무는 백매화보다 먼저 꽃을 터뜨리며, 아직 꽃망울만 맺힌 지금이 오히려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시기다.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7호로 지정된 이 공간은 단순한 봄꽃 명소가 아니다.

명나라 황제의 효자 정려를 받은 조선 유학자의 이야기가 깃든 이곳은, 역사의 무게와 봄꽃의 가벼움이 묘하게 공존하는 곳이다.

갑촌마을 품에 자리한 430년 서원의 입지

도암서원 풍경
도암서원 풍경 / 사진=고창군

도암서원(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819, 갑촌마을)은 1613년 광해군 5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공음면 칠암리 갑촌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홍살문과 하마비가 방문객을 맞이하며, 마을 지형이 서원을 감싸 안듯 자리해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서원은 조선 전기 유학자 김질(1496~1555)과 그의 증손 김경철, 아우 김익철을 배향하고 있으며, 2005년 6월 17일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7호로 지정되어 공식적인 문화재 지위를 갖추고 있다. 창건 이후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을과 함께 숨 쉬어온 공간으로, 오늘날에도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명나라 황제가 내린 효자 정려와 주요 건축물

도암서원 도암사
도암서원 도암사 / 사진=고창군

도암서원의 중심 인물인 김질은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효행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의 지극한 효성은 국경을 넘어 명나라에까지 알려졌으며, 1546년 명나라 가정제가 직접 효자 정려를 하사했다. 이른바 ‘가정병오 천조정려’로 불리는 이 정려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외국 황제의 공식 인정이었다.

서원 경내에는 강당 역할을 하는 영모당, 효자 정려각, 녹권함을 보관하는 봉안각, 그리고 도암사가 나란히 자리한다. 특히 봉안각의 녹권함과 하마비는 고창 지역 내에서도 유일한 유물로, 국가유산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는 셈이다.

이른 봄 홍매화와 청보리밭 축제 연계 동선

고창 청보리밭 축제
고창 청보리밭 축제 / 사진=고창군

도암서원이 봄마다 주목받는 이유는 경내에 피어나는 홍매화 때문이다. 백매화보다 일찍 꽃망울을 터뜨리는 홍매화는 아직 잎 한 장 없는 가지 위에서 붉은 빛을 발하며, 고즈넉한 서원 돌담과 어우러져 깊은 인상을 남긴다. 현재는 꽃망울이 맺힌 시기로, 개화가 본격화되면 담장 너머로 붉은 꽃이 넘쳐흐르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도암서원이 위치한 공음면에는 또 하나의 봄 명소가 있다. 같은 공음면 학원관광농장(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길 150)에서 열리는 제23회 고창 청보리밭 축제가 4월 18일부터 5월 10일까지 이어지며, 두 곳을 묶은 봄 동선이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도암서원 방문 정보와 이용 안내

도암서원 홍매화
도암서원 홍매화 / 사진=고창군

도암서원은 별도의 입장료 없이 방문할 수 있으며, 갑촌마을 안쪽에 자리한 만큼 마을 입구에 차량을 세우고 도보로 이동하는 편이 편리하다. 고창읍내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거리이며, 대중교통 이용 시 고창 공음면 방면 버스를 이용한 뒤 마을까지 걸어 들어가야 한다.

홍매화 개화 시기는 기상 조건에 따라 매년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최신 개화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연계 여행지인 고창 청보리밭 축제(4월 18일~5월 10일)는 도암서원에서 차로 10분 내외 거리에 있어 당일 코스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주말에는 방문객이 몰릴 수 있으므로 평일 오전 방문이 한적하다.

홍매화
홍매화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도암서원은 역사 속 한 인물의 효행이 오늘날까지 공간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명나라 황제의 정려가 새겨진 서원 마당에서 홍매화가 피어나는 장면은, 긴 시간의 층위를 한눈에 느끼게 한다.

봄꽃보다 먼저, 조용히 피어나는 무언가를 찾는다면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인 지금 고창 공음면으로 향해 이 서원의 이른 봄을 직접 마주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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