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꽃무릇·동백꽃이 이어진다고?”… 사계절을 뚜렷하게 느끼는 천연기념물 명소

입력

고창 선운사
백제 신화와 천연기념물이 어우러진 단풍 명소

선운사 전경
선운사 전경 / 사진=선운사

가을이 깊어지면 마음은 어김없이 붉고 노란빛으로 물든 자연을 향한다. 수많은 단풍 명소가 저마다의 화려함을 뽐내지만, 그 화려함 너머에 천 년의 이야기를 품은 곳을 만나는 것은 흔한 경험이 아니다. 혹시 전북 고창의 선운사를 그저 ‘가을 사진 찍기 좋은 절’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면, 그 생각은 절반만 맞다.

이곳은 단순한 풍경 맛집이 아니다. 백제의 숨결이 깃든 창건 설화부터 500년의 세월을 이겨낸 살아있는 생명의 증거까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시간의 층위가 펼쳐지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단풍잎 하나에도 오랜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곳, 진짜 깊이 있는 가을 여행이 시작되는 고창 선운사로 떠나본다.

선운사

선운사 단풍
선운사 단풍 / 사진=ⓒ한국관광공사 이범수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병풍처럼 둘러싼 도솔산(兜率山)의 깊은 품 안에 자리한 천년 고찰이다.

흔히 ‘선운산’이라 불리는 이곳은 행정구역상 선운산도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사찰 자체가 공원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이곳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보물 제290호)을 비롯해 보물 8점, 천연기념물 3점,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1점 등 총 25점의 지정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어, 발길 닿는 모든 곳이 역사 교과서나 다름없다.

이 고찰의 시작은 백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러 설이 존재하지만,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고승 검단(檢旦)선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전해진다.

선운사 꽃무릇
선운사 꽃무릇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을의 선운사는 그야말로 자연이 빚어낸 한 폭의 수채화다.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는 계곡과 산책로를 따라 상사화, 즉 꽃무릇 군락이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융단을 깔아놓는다.

그 붉은빛이 잦아들 때쯤이면, 10월 말부터 11월 초순까지는 기다렸다는 듯 오색 단풍이 절정을 맞이한다. 특히 사찰로 들어가는 길목의 계곡과 어우러진 단풍 터널은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도 ‘한국의 가을을 가장 완벽하게 담을 수 있는 장소’로 손꼽힌다.

하지만 선운사의 진정한 가치는 화려한 계절의 색채 너머, 대웅전 뒤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법당 뒤뜰을 병풍처럼 가득 메운 동백나무 숲은 수령이 무려 500년에 달하며, 국가가 지정한 천연기념물 제184호다.

겨울 눈 속에서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이 고목들은 사찰의 오랜 역사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생명력 넘치는 증거다. 이른 봄, 붉은 동백꽃이 만개할 때의 장관은 가을 단풍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하며 선운사를 사계절 내내 찾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선운사 단풍과 스님
선운사 단풍과 스님 / 사진=ⓒ한국관광공사 이범수

이곳을 제대로 경험하려면 아침 일찍 방문하는 것이 좋다. 오전 6시부터 문을 열어 이른 아침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온전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운영 마감은 오후 7시다.

방문 계획 시 유의할 점은 입장료 정보다. 2023년 문화재 관람료 감면 정책 시행 이후 일부 사찰이 무료 개방되었으나, 선운사는 교구 본사의 자산 관리 및 문화재 유지·보수를 위해 현재 어른 기준 4,000원의 문화재구역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다. 주차 시에는 선운산도립공원 주차장에서 소형차 기준 2,000원의 요금이 별도로 부과된다.

선운사 단풍
선운사 단풍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무엇보다 선운사의 큰 매력은 접근성에 있다.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야 비경을 내어주는 여타 단풍 명소들과 달리, 주차장에서 사찰까지 완만하고 아름다운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등산의 수고로움 없이도 유모차를 끌거나 어르신을 모시고도 자연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은 온 가족이 함께 가을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다.

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고창 선운사는 단순히 눈으로만 즐기는 관광지가 아니다. 백제의 창건 설화, 500년 세월을 이겨낸 동백나무의 생명력, 그리고 매년 어김없이 찾아와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꽃과 잎사귀들.

이 모든 시간의 층위를 온몸으로 느끼며 걷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이 어느새 고요히 가라앉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번 가을, 진짜 이야기가 있는 깊이 있는 여행지를 찾는다면 주저 없이 선운사로 향해보자.

전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