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동화정원
인공 없이 피어난 8만㎡의 기적

“이 모든 게 무료라고?”라는 질문이 절로 터져 나오는 곳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꽃의 바다에 입장료도, 주차요금도 없다는 사실은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비현실적인 판타지처럼 들린다. 하지만 전남 곡성에서는 이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된다.
인위적인 시설물과 화려한 조형물을 덜어내고 땅이 가진 본연의 힘과 아름다움을 오롯이 드러낸 공간. 처음에는 그저 아름답지만, 그곳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나면 경이롭기까지 한 곳. 올가을, 지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순수한 위로를 선사할 곡성 동화정원으로 떠나야 할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땅의 기억을 품은 정원

곡성 섬진강기차마을 동화정원의 공식 주소는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묘천리 14-1번지 일원이다. 하지만 이곳을 찾아가는 여정은 내비게이션 주소지가 아닌, 바로 옆 충의공원에서 시작된다. 6.25 전쟁 호국영령을 기리는 충혼탑이 있는 이 엄숙한 공간을 지나 운치 있는 소나무 숲 오솔길로 발걸음을 옮기면, 풍경은 극적으로 반전된다.
솔숲 사이사이 하얗게 피어난 구절초와 인사를 나누며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는 순간,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규모의 백일홍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국제 규격 축구장 약 11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 80,000㎡의 대지가 온통 붉고 분홍빛의 백일홍으로 일렁이는 장관은 숨을 멎게 할 만큼 압도적이다.

이곳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 탄생 과정에 있다. 원래 동화정원 부지는 평범한 경작지와 과수원, 그리고 야산이 뒤섞여 있던 땅이었다.
일반적인 개발 방식이라면 모든 것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그림을 그렸겠지만, 곡성은 다른 선택을 했다. 낡은 헛간, 밭 사이에 서 있던 전봇대, 비탈진 지형 등 땅이 품고 있던 원래의 모습을 최대한 존중하며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인공물로 가득 찬 다른 공원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이곳에서는 화려한 조형물 대신, 땅의 기억 자체가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이 된다.
사진작가들이 먼저 알아본 ‘왕따나무’의 미학

이러한 조성 철학의 정점은 정원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홀로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 일명 ‘왕따나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서울 올림픽공원의 ‘왕따나무’를 연상시키며 이미 사진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난 명소다. 이 나무는 의도적으로 남겨졌다.
주변의 모든 것을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하나의 피사체에 시선이 완벽하게 집중되도록 만든 것이다. 광활한 백일홍 밭과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선 나무 한 그루는 그 자체로 완벽한 ‘프레임 속 여백의 미’를 보여준다. 방문객들은 이 ‘역설의 왕따나무’ 앞에서 저마다의 인생 사진을 남기며 공간의 철학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현재 곡성 동화정원은 10월 20일경 절정을 맞이할 백일홍이 만개해 10월 말까지 천상의 화원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 풍경은 마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알프스 초원지대를 떠올리게 한다.

방문 계획이 있다면 운영 시간을 기억하자. 개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입장료와 주차요금은 모두 무료다. 주차는 충의공원 주차장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대중교통 접근성도 뛰어나다.
곡성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약 400m, KTX가 정차하는 곡성역에서도 약 600m 거리로, 느긋하게 걸어서 10~15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다. 정원과 함께 인근의 뚝방 생태공원이나 뚝방마켓을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은 여행 코스가 될 것이다.
아무리 힘든 마음도 드넓은 꽃밭 앞에 서면 이내 꽃밭이 된다는 말이 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동화정원의 백일홍 물결은 그 말을 증명한다. 올가을, 텅 비었기에 더욱 완벽하게 채워진 이 거대한 자연의 품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값진 위로와 휴식을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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