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에서 10분 걸었을 뿐인데”… 2만4천 평 꽃바다에 감탄나오는 가을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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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동화정원
인공 없이 피어난 8만㎡의 기적

곡성 동화정원 백일홍
곡성 동화정원 백일홍 / 사진=곡성 공식블로그

“이 모든 게 무료라고?”라는 질문이 절로 터져 나오는 곳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꽃의 바다에 입장료도, 주차요금도 없다는 사실은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비현실적인 판타지처럼 들린다. 하지만 전남 곡성에서는 이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된다.

인위적인 시설물과 화려한 조형물을 덜어내고 땅이 가진 본연의 힘과 아름다움을 오롯이 드러낸 공간. 처음에는 그저 아름답지만, 그곳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나면 경이롭기까지 한 곳. 올가을, 지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순수한 위로를 선사할 곡성 동화정원으로 떠나야 할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땅의 기억을 품은 정원

동화정원 백일홍
동화정원 백일홍 / 사진=곡성 공식블로그

곡성 섬진강기차마을 동화정원의 공식 주소는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묘천리 14-1번지 일원이다. 하지만 이곳을 찾아가는 여정은 내비게이션 주소지가 아닌, 바로 옆 충의공원에서 시작된다. 6.25 전쟁 호국영령을 기리는 충혼탑이 있는 이 엄숙한 공간을 지나 운치 있는 소나무 숲 오솔길로 발걸음을 옮기면, 풍경은 극적으로 반전된다.

솔숲 사이사이 하얗게 피어난 구절초와 인사를 나누며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는 순간,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규모의 백일홍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국제 규격 축구장 약 11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 80,000㎡의 대지가 온통 붉고 분홍빛의 백일홍으로 일렁이는 장관은 숨을 멎게 할 만큼 압도적이다.

곡성 동화정원 가는길
곡성 동화정원 가는길 / 사진=곡성 공식블로그

이곳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 탄생 과정에 있다. 원래 동화정원 부지는 평범한 경작지와 과수원, 그리고 야산이 뒤섞여 있던 땅이었다.

일반적인 개발 방식이라면 모든 것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그림을 그렸겠지만, 곡성은 다른 선택을 했다. 낡은 헛간, 밭 사이에 서 있던 전봇대, 비탈진 지형 등 땅이 품고 있던 원래의 모습을 최대한 존중하며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인공물로 가득 찬 다른 공원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이곳에서는 화려한 조형물 대신, 땅의 기억 자체가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이 된다.

사진작가들이 먼저 알아본 ‘왕따나무’의 미학

곡성 동화정원 왕따나무
곡성 동화정원 왕따나무 / 사진=전라남도 공식블로그 강기화

이러한 조성 철학의 정점은 정원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홀로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 일명 ‘왕따나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서울 올림픽공원의 ‘왕따나무’를 연상시키며 이미 사진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난 명소다. 이 나무는 의도적으로 남겨졌다.

주변의 모든 것을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하나의 피사체에 시선이 완벽하게 집중되도록 만든 것이다. 광활한 백일홍 밭과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선 나무 한 그루는 그 자체로 완벽한 ‘프레임 속 여백의 미’를 보여준다. 방문객들은 이 ‘역설의 왕따나무’ 앞에서 저마다의 인생 사진을 남기며 공간의 철학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현재 곡성 동화정원은 10월 20일경 절정을 맞이할 백일홍이 만개해 10월 말까지 천상의 화원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 풍경은 마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알프스 초원지대를 떠올리게 한다.

곡성 동화정원 황화코스모스
곡성 동화정원 황화코스모스 / 사진=전라남도 공식블로그 강기화

방문 계획이 있다면 운영 시간을 기억하자. 개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입장료와 주차요금은 모두 무료다. 주차는 충의공원 주차장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대중교통 접근성도 뛰어나다.

곡성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약 400m, KTX가 정차하는 곡성역에서도 약 600m 거리로, 느긋하게 걸어서 10~15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다. 정원과 함께 인근의 뚝방 생태공원이나 뚝방마켓을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은 여행 코스가 될 것이다.

아무리 힘든 마음도 드넓은 꽃밭 앞에 서면 이내 꽃밭이 된다는 말이 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동화정원의 백일홍 물결은 그 말을 증명한다. 올가을, 텅 비었기에 더욱 완벽하게 채워진 이 거대한 자연의 품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값진 위로와 휴식을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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