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가 인정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천 년을 버틴 신사 위로 붉게 물든 단풍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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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마곡사,
천년을 견딘 십승지지의 가을

마곡사 희지천
마곡사 희지천 / 사진=공주 문화관광

어떤 공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시간을 이겨낸다. 수많은 전쟁과 재난 속에서도 훼손되지 않고 본래의 모습을 지키는 땅, 옛사람들은 그런 곳을 ‘십승지지’라 부르며 신성시했다. 충남 공주 태화산의 깊은 품에 안긴 마곡사가 바로 그런 곳이다. 임진왜란의 불길도, 6.25 전쟁의 포화도 이곳만은 비켜갔다.

그리고 2018년, 유네스코는 이곳을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올가을, 우리가 마곡사로 향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붉고 노란 단풍잎 때문만은 아니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 생명을 품어낸 위대한 공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이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천년의 가치

마곡사 희지천 돌다리
마곡사 희지천 돌다리 / 사진=공주 문화관광

마곡사는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에 위치한 천년 고찰로,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언급된 ‘십승지지’, 즉 난세에 몸을 보전할 수 있는 10곳의 명당 중 하나라는 점이다. 실제로 마곡사는 창건 이래 큰 전란의 피해 없이 원형을 잘 보존해왔고, 이는 오늘날 우리가 고스란히 천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마곡사
마곡사 / 사진=공주 공식블로그 김태상

이러한 독보적 가치를 세계도 인정했다. 2018년, 마곡사는 법주사, 통도사 등 6개 사찰과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는 단순히 오래된 건축물을 넘어, 7세기 이후 한국 불교의 살아있는 전통과 역사가 단절 없이 이어져 온 종합 수행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공인받은 것이다. 방문객들은 그저 경내를 걷는 것만으로도 세계가 인정한 인류의 유산 속을 거닐게 되는 셈이다.

백범의 결단과 숨결이 깃든 곳

마곡사 단풍
마곡사 단풍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마곡사의 역사적 깊이는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의 흔적과 만나며 더욱 짙어진다. 1896년, 청년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군 장교를 처단하고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하다 탈옥한 뒤, 이곳 마곡사로 숨어들었다. 그는 대광보전 앞의 향나무를 직접 심은 뒤 삭발하고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출가하여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국가의 운명이 위태롭던 시절 한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고뇌와 결단이 서린 장소라는 점에서 마곡사는 우리에게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오늘날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향나무는 그날의 역사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계곡 따라 흐르는 가을

마곡사 해탈문
마곡사 해탈문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렇듯 묵직한 역사를 품은 마곡사는 10월 말부터 11월 초가 되면 화려한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다. 사찰을 감싸고 흐르는 태화천 계곡을 따라 붉고 노란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고즈넉한 사찰의 기와지붕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한다. 일주문에서부터 시작되는 오색 단풍길은 걷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며, 속세의 시름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답다.

특히 이곳은 문화재구역 입장료(성인 3,000원, 청소년 1,500원)와 주차료(소형차 기준 3,000원 선) 외에 사찰 자체의 별도 입장료가 없어, 부담 없이 가을의 정취와 역사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 운영 시간은 보통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해가 떠 있는 동안 여유롭게 경내를 둘러볼 수 있다.

고요한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풍경 소리, 발밑에서 바스러지는 낙엽 소리, 그리고 역사의 흔적을 더듬는 사색의 시간까지. 마곡사는 단순한 단풍 구경을 넘어, 마음의 평온과 지적인 충만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특별한 여행지다. 올가을, 북적이는 관광지를 벗어나 진정한 쉼과 의미를 찾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공주 마곡사로 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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