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행주산성, 432년 전 대첩의 기억을 품은 봄 산책 명소

이른 봄, 한강 줄기를 따라 미세한 온기가 번지기 시작하면 경기 북부의 야트막한 산 하나가 조용히 깨어난다. 해발 124m 덕양산 능선에 차곡차곡 쌓인 흙벽 너머로 개나리가 피어오르고, 그 아래 한강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풍경은 어지간한 유명 명소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경치 하나만이 아니다. 1593년 불과 2,300명의 조선군이 3만여 왜군의 9차례 공격을 막아낸 전장(戰場)이자, 그 기억을 432년째 품고 있는 살아 있는 역사 공간이기 때문이다.
입장료 한 푼 없이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봄날의 목적지, 고양 행주산성이 올해도 야간개장의 문을 열었다.
사적 제56호,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덕양산의 역사

고양 행주산성(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로15번길 89)은 덕양산 7·8부 능선을 따라 쌓아 올린 테뫼식 토축산성이다. 삼국시대에 처음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적갈색 연질토기와 어골문 기와는 이 성벽이 고려시대까지 꾸준히 사용되었음을 뒷받침한다.
2017~2019년 조사에서는 정상부에서 약 450m 길이의 석성 구조물이 추가로 확인되어 산성의 역사적 층위가 한층 두터워졌다.
내성은 정상부 둘레 약 250m의 토루(土壘)로 이루어졌으며, 북쪽 골짜기를 감싼 외성과 함께 이중 방어 구조를 이룬다. 전체 둘레는 약 1,000m에 이르고, 현재 복원된 구간은 415m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6호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 공식 명칭이 ‘고양 행주산성’으로 변경되었다.
2,300명 대 3만 명, 행주대첩의 전장이 된 산성

1593년(선조 26) 음력 2월 12일, 이 작은 산성은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로 역사에 새겨졌다. 권율 장군이 이끄는 관군·의병·승병 약 2,300명은 우키타 히데이에가 총지휘하는 7개 부대 약 3만 왜군의 공세를 새벽부터 일몰까지 9차례 막아냈다.
화차·수차석포·진천뢰 등 조선군의 화기가 위력을 발휘하며 전세를 뒤집었고, 부녀자들이 짧은 치마에 돌을 날라 병사들을 도왔다는 이야기는 오늘날 ‘행주치마’라는 이름의 유래설로 전한다. 경내에는 이 대첩을 기리는 시설이 고루 갖춰져 있다.
대첩문을 지나 권율장군 동상을 만나고, 충장사에서 장군의 영정을 마주한 뒤 덕양정에 오르면 한강과 방화대교가 한눈에 펼쳐진다. 1602년 건립된 행주대첩비(구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는 비문 최립, 글씨 한호의 이름이 새겨진 조선 전기 금석문의 정수이기도 하다.
봄밤을 물드는 야간개장과 계절 볼거리

2026년 행주산성의 야간개장은 3월 14일(토)부터 시작된다. 행주대첩 기념제와 같은 날 문을 연 이번 야간개장은 10월까지 매월 둘째·넷째 토요일에 열리며, 18시부터 22시까지 산성 안을 걸을 수 있다. 야간 입장마감은 21시이고, 18시 이후 야간개장 시간대에는 주차비도 무료다.
조명이 켜진 능선을 따라 걷다가 덕양정에서 내려다보는 한강 야경은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선사하는 편이다.
봄철 주간 방문에도 볼거리는 풍성하다. 4월 초·중순이면 대첩문 주변과 탐방로를 따라 개나리와 벚꽃, 철쭉이 차례로 피어 산성 전체가 꽃 속에 잠기며, 한강과 어우러진 풍경이 도심 근교 나들이 명소로 손색없는 계절이 된다.
무료 입장·주차 안내와 방문 전 확인 사항

입장료는 연중 무료다. 관람시간은 3~10월 09:00~18:00(입장마감 17:00), 11~2월 09:00~17:00(입장마감 16:00)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주차는 제1주차장(80면)·제2주차장(150면) 총 230면이 운영되고, 요금은 1구획당 2,200원(카드결제만 가능)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지하철 3호선 화정역에서 85-1·011·012·921번 등 버스를 타면 행주산성 정류장에서 도보 5분 거리다. 장애인·노약자·임산부를 위한 교통약자 지원차량도 월요일을 제외하고 09:00~17:00 연중 운행한다.
금연 구역이며 텐트·돗자리·그늘막·취사도구 반입과 반려동물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악천후 시 야간개장이 취소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관리사무소(☎031-8075-4642)에 확인하는 편이 좋다.

행주산성은 전쟁의 기억을 단단하게 품으면서도, 봄볕 아래 한강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산책로로 두 얼굴을 함께 내보이는 공간이다. 무게 있는 역사와 가벼운 봄 나들이가 한 길 위에 공존한다는 것이 이 산성만의 묘미로 남는다.
꽃이 활짝 피고 강바람이 부드러워지는 이 계절, 덕양산 능선에 올라 432년 전 그 용기의 땅을 직접 두 발로 걸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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