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대릉원 배롱나무,
고분 위에 피어난 백일의 붉은 빛

경주 시내 중심부,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에 거대한 녹색 언덕들이 섬처럼 떠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31-1에 위치한 대릉원(大陵苑)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과거와 현재가 숨 쉬고 낮과 밤이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거대한 ‘시간의 예술관’이다.
특히 8월의 대릉원은 초록빛 능선 위로 피어난 연분홍 배롱나무꽃이 절정을 이루며 가장 화려한 모습을 뽐낸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의 핵심으로 등재된 이곳에서, 여름의 색채와 천 년의 밤이 선사하는 감동을 만나본다.
매년 7월부터 피기 시작해 8월에 만개하는 배롱나무꽃은 여름 대릉원의 상징과도 같다. 한번 피면 100일 동안 붉은 기운을 유지한다 하여 ‘백일홍(百日紅)’이라고도 불리는 이 꽃은, 영겁의 시간을 간직한 고분과 어우러져 특별한 미감을 자아낸다.

대릉원 정문으로 들어서 미추왕릉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잔디의 싱그러운 초록빛과 대비를 이루는 배롱나무의 화사한 분홍빛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대릉원의 배롱나무는 한곳에 밀집해 있지 않고, 산책로를 따라 곳곳에 흩어져 있어 저마다 다른 풍경을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황남대총의 웅장한 능선을 배경으로 선 배롱나무, 작은 고분들 사이에 수줍게 자리한 배롱나무 등 각기 다른 구도 속에서 자신만의 ‘인생 사진’을 남기려는 발길이 이어진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초록과 분홍의 강렬한 색채 대비는 대릉원의 여름을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계절로 만든다.

화려한 여름 풍경에 취해 걷다 보면 대릉원의 심장부인 천마총(天馬塚)에 닿게 된다. 대릉원에 있는 고분 중 유일하게 내부가 공개된 곳으로, 1973년 발굴 당시 신라 시대 유물이 대거 쏟아져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중에서도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을 그린 ‘천마도 말다래(국보)’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재 천마총 내부에 전시된 유물들은 대부분 복제품이지만, 신라의 독특한 무덤 양식인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 가치가 매우 높다.
덧널(목곽) 주변을 강돌로 채우고 그 위를 흙으로 덮는 복잡한 구조는 도굴을 막고 유물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료 관람(성인 3,000원)이지만, 신라의 황금 유물과 무덤 축조 기술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므로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대릉원은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2022년 입장료가 무료로 전환되고 야간 개장(22시까지)이 활성화되면서, 대릉원은 경주 최고의 야간 명소로 급부상했다. 고분 하나하나의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정교하게 설치된 조명은, 낮과는 전혀 다른 신비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둠 속에서 은은한 빛을 받아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떠오른 고분들 사이를 걷는 경험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바람이 없는 날, 대릉원 중앙의 연못에 비친 황남대총의 반영은 야간 관람의 백미로 꼽힌다.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마시며 즐기는 고요한 밤 산책은, 시끌벅적한 낮의 관광지와는 다른 경주의 매력을 발견하게 해준다.
방문을 위한 종합 안내

경주 대릉원은 연중무휴로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하며, 입장 마감은 오후 9시 30분이다. 정문은 22시까지, 후문은 21시 30분까지 개방되므로 시간을 잘 확인하고 방문해야 한다. 대릉원 자체의 입장은 무료이나, 내부의 천마총 관람은 별도의 요금이 부과된다.
주차의 경우, 대릉원 인근에 여러 공영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이용이 가능하다. 여름 배롱나무 시즌이나 주말에는 인파가 몰리므로, 가급적 대중교용을 이용하거나 시간적 여유를 두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천 년의 역사를 품고 사계절 내내, 그리고 낮과 밤의 구분 없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대릉원은 경주 여행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기에 가장 완벽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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