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대릉원
설경이 만든 천년의 고요

12월,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경주의 고분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변한다. 지름 47m에서 82m에 이르는 거대한 봉분 23기가 하얀 눈으로 덮이면서 마치 설원 위에 솟아오른 듯한 장관을 이루는 것이다.
평소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왕릉들은 눈이 쌓이면 형태가 더욱 또렷해지고, 시각적으로도 선명한 대비가 생겨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연의 소리가 잦아든 듯한 고요함 속에서 능선 위에 앉은 눈이 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고, 앙상한 가지를 가진 고목들도 끝부분에 눈을 머금어 하나의 겨울 정원처럼 펼쳐진다. 드라마 <20세기 소녀>의 배경이기도 한 이곳에서 겨울만이 선사하는 특별한 풍경을 살펴봤다.
경주 대릉원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31-1에 위치한 대릉원의 겨울 풍경 중에서도 이른 아침 설경은 단연 압권이다. 인파가 거의 없고 눈이 아직 밟히지 않아 봉분 주변에 선명한 흰색이 남아 있으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준다.
23기의 고분이 능선을 그리듯 이어지는 모습은 눈이 쌓이면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나며, 발자국 하나 없는 새벽의 고요 속에서 천년 신라 왕릉의 위엄이 그대로 전해진다.
특히 황남대총 포토존 주변은 겨울철 눈이 쌓일 때 가장 인기 있는 촬영 장소다. 봄과 여름에는 초록빛, 가을에는 연한 갈색이었던 봉분이 겨울에는 순백의 하얀색으로 물들어 색다른 감동을 선사하는 셈이다.
고분 사이에 서 있는 목련 나무 한 그루도 눈을 머금으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변하며, 가을의 화려함과는 완전히 다른 고요하고 깊은 분위기를 만든다.
내부 관람으로 완성되는 여정

대릉원에서 내부 관람이 가능한 고분은 천마총이 유일하다. 1973년 발굴된 천마총은 지름 47m, 높이 12.7m 규모로,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 드리개가 출토되어 이름을 얻었다.
눈 덮인 봉분 외부를 감상한 뒤 내부로 들어가면 금관을 비롯한 수많은 유물과 실제 고분 구조를 직접 볼 수 있어, 신라 시대 장례 문화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천마총 관람료는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이며, 대릉원 자체는 무료로 개방된다. 이 덕분에 눈 내린 고분 외부를 산책하다가 추위를 피해 천마총 내부로 들어가 잠시 쉬어가는 방식으로 일정을 조절할 수 있다.
겨울철에는 실내 관람 공간이 있다는 점이 특히 유용하며, 유모차와 휠체어 대여도 가능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편리하다.

대릉원은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되며 입장 마감은 21시 30분이다. 연중무휴로 개방되기 때문에 눈이 내린 날을 노려 언제든 방문할 수 있고, 시간대별로 완전히 다른 설경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이른 아침에는 밟히지 않은 새하얀 눈이, 낮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눈이, 저녁에는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눈이 각각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주차장은 최초 2시간 2,000원, 이후 1시간마다 1,000원이 추가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눈 내린 날에는 사진 촬영을 위해 장시간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데, 주차비 부담이 적어 여유롭게 설경을 즐길 수 있다.
대릉원 정문 매표소에서는 유모차 대여가 가능하며, 문의가 필요한 경우 054-771-8650으로 연락하거나 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색을 덜어낸 풍경의 힘

대릉원의 겨울은 여백이 많은 풍경 속에서 고요함을 선사한다. 가을의 화려한 단풍이나 여름의 푸른 잔디와 달리, 겨울은 색을 모두 덜어낸 채 오직 형태와 분위기로 풍경을 채운다. 눈으로 덮인 고분은 마치 세월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는 듯한 인상을 주며, 조용한 시간 속에서 산책의 속도가 더욱 느긋해지는 셈이다.
노동동, 노서리, 황남동, 황오동, 인왕동 등 5개 고분군에 속한 23기의 왕릉은 각각 4~5세기경 축조된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신라 초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21년 금관이 출토된 금관총, 1946년 고구려 광개토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 그릇이 발견된 호우총 등 역사적 가치가 깊은 무덤들이 설경 속에서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많은 방문객들은 “사진보다 실물이 더 좋다”고 말하며, 특히 눈 내린 날의 대릉원은 직접 걸어보아야만 알 수 있는 감동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주 대릉원의 설경은 화려한 자극 없이도 천천히 걷는 시간이 마음을 깊게 만드는 풍경이다. 23기의 왕릉이 하얀 눈으로 덮여 능선을 그리는 모습은 천년의 시간을 품은 채 고요히 숨 쉬며, 무료 개방 덕분에 부담 없이 여러 번 방문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12월 눈 내린 날, 이른 아침 대릉원으로 향해보길 권한다. 밟히지 않은 새하얀 눈 위로 첫 발자국을 남기며 신라 왕릉 사이를 걷다 보면,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함께 흐르는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의 고요함과 설경의 아름다움은 여행을 마친 뒤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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