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만 3천 명 몰리는 이유를 알겠네”… 7천 평 황금빛으로 물든 무료 은행나무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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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도리마을 은행나무숲
사유지에서 모두의 가을 안식처가 되기까지

경주 도리마을 은행나무숲
경주 도리마을 은행나무숲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을이 깊어지면 대한민국은 온통 울긋불긋한 색의 향연에 빠져들지만, 유독 순수한 황금빛 하나로 전국의 여행자를 불러 모으는 곳이 있다. 끝없이 뻗은 노란 터널 아래로 황금빛 융단이 깔리는 비현실적인 풍경.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생샷 성지’라는 별칭을 얻으며 절정기에는 하루 1만 3천 명의 발길을 붙잡는 이곳은 단순한 단풍 명소가 아니다.

한때는 농작물 피해를 유발하는 애물단지로 취급받으며 송두리째 베어질 뻔한 위기를 겪었던, 기적 같은 역사를 품은 숲이다. 개인의 묘목 농장이 어떻게 경주를 대표하는 공공의 가을 안식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을까.

도리마을 은행나무숲

“7천 평에 아름답게 물든 은행나무 명소”

도리마을 은행나무
도리마을 은행나무 / 사진=경주시 공식블로그 최인준

이야기의 무대인 경주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은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도리길 35-102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사실에 놀란다.

첫째는 마치 컴퓨터 그래픽처럼 완벽하게 정렬된 나무들의 모습이고, 둘째는 이 거대한 숲의 입장료와 주차비가 모두 무료라는 점이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하려면 숲의 뿌리, 즉 탄생 배경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 숲은 본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군락지가 아니다. 한 개인이 묘목을 키워 판매할 목적으로 수십 년 전부터 정성껏 가꾼 사유지였다. 나무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맞춰 심겼고, 가지가 옆으로 퍼지기보다 위로 곧게 뻗도록 관리되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자, 상업적 목적의 이 농장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장관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은 수천 그루의 은행나무가 만들어낸 2만 3천㎡(약 7,000평) 규모의 숲은, 특히 가을이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방문객들의 넋을 잃게 만드는 명소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사라질 뻔했던 황금 숲, 갈등과 상생의 기록

도리마을 벽화
도리마을 벽화 / 사진=경주시 공식블로그 최인준

숲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그림자도 짙어졌다. 수십 미터 높이로 자란 은행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면서 인근 밭에 그늘을 드리워 농작물 생육에 피해를 주기 시작했고, 일부 주민들은 조망권 침해를 호소했다. 관광객이 몰려들며 발생하는 소음과 쓰레기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결국 토지 소유주와 주민들 간의 갈등은 깊어졌고, 숲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소유주는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는 것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경주시가 중재에 나서 농지를 매입해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협상은 순탄치 않았다.

‘전국의 명소가 사라질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 숲을 사랑하던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여론으로 번져나갔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서는 숲의 보존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리마을 은행나무 벽화
도리마을 은행나무 벽화 / 사진=경주시 공식블로그 최인준

결국 경주시가 결단을 내렸다. 시민과 전국의 관광객들이 보내온 강력한 보존 여론에 힘입어, 시는 2018년 마침내 숲 전체를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경주시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전국적인 가을 명소로 알려진 은행나무 숲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안타깝다는 여론이 많아 시가 매입을 결정했다”고 밝히며, 이 결정이 시민의 뜻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 개인의 사유재산이었던 숲이 벌목의 위기를 딛고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공공의 자산으로 거듭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도리마을 은행나무숲 200% 즐기기

도리마을 은행나무숲 모습
도리마을 은행나무숲 모습 / 사진=경주시 공식블로그 최인준

경주시가 직접 관리하는 공공의 숲이 된 덕분에, 방문객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이 황홀한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경주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은 연중무휴, 24시간 개방되며 입장료나 주차 요금은 일절 없다.

숲 입구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방문객이 폭증하는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는 인근 운동장이 임시 주차장으로 추가 운영되어 주차난 해소에 도움을 준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숲 내부에 공중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방문도 가능하다. 경주 시내에서 303번 버스를 타고 ‘도리보건소’ 정류장에서 내리면, 도보 5분 만에 숲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버스는 하루 5회만 운행되므로, 방문 전 반드시 시간표를 확인하여 여행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도리마을 모습
도리마을 모습 / 사진=경주시 공식블로그 최인준

숲은 빽빽한 나무들 덕분에 산책로를 따라 가볍게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은행잎이 만들어내는 노란 융단 위를 걷는 경험, 그리고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은 다른 어떤 단풍 명소에서도 쉽게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올가을, 역사와 문화의 도시 경주를 찾는다면 잠시 발걸음을 서쪽으로 돌려보자. 그곳에는 한때의 아픔을 딛고 더욱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숲이 당신에게 잊지 못할 인생의 한 페이지를 선물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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