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공개됐는데 무료라고요?”… 입장료 없이 만나는 비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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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천년숲정원
반세기 연구의 역사를 품고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다

경북천년숲정원
경북천년숲정원 / 사진=경주시 공식블로그 최인준

경주하면 흔히 첨성대나 불국사를 떠올리지만, 천년고도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화려한 유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고요한 사색과 완전한 휴식을 갈망하는 이들을 위한 숨겨진 녹색 보석.

바로 수십 년간 정예 연구원들의 발길만 허락했던 비밀의 숲이 마침내 문을 연 곳이다. 그곳은 단순한 공원이 아닌,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식물 박물관이었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경상북도 경북천년숲정원.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이라는 이름 아래, 이곳의 나무와 풀들은 오직 연구와 보존이라는 엄격한 사명 속에서 자라왔다.

천연기념물의 대를 잇고 희귀 식물의 명맥을 지키던 그 생명력 넘치는 공간이, 이제는 축구장 46개에 달하는 거대한 품을 열어 지친 도시인들을 묵묵히 위로하는 푸른 안식처가 되었다. 수십 년의 시간이 응축된 숲의 깊이는, 단 몇 년 만에 급조된 여느 도시 공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한 울림을 선사한다.

경북천년숲정원

경북천년숲정원 버들못정원
경북천년숲정원 버들못정원 / 사진=경주시 공식블로그 최인준

경상북도 경북천년숲정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통일로 366-4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본래 1960년대부터 경상북도의 산림 자원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보존해온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의 핵심 연구 공간이었다.

천연기념물 후계목을 증식하고 희귀 식물 유전자를 보존하며, 산림 병해충을 방제하는 등 지난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며 경북의 산림을 지키는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이처럼 오랜 세월 축적된 연구의 결실과 정성으로 가꿔온 공간이, 마침내 2023년 4월 24일 도민을 위한 휴식처로 문을 활짝 열었다.

축구장 46개 크기와 맞먹는 33만㎡의 광활한 부지에는 수목 350여 종과 초본 50여 종, 총 400여 종에 이르는 방대한 식물 유전자원이 집대성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조경을 넘어,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야외 식물도감인 셈이다.

이곳은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10만㎡ 이상의 면적, 주제별 정원, 편의시설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여 공식적으로 지정된 경상북도 제1호 지방정원이라는 법적 지위까지 갖췄다. 이름뿐인 공원이 아닌, 국가가 인정한 전문성과 체계를 갖춘 공간이라는 의미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숲

경북천년숲정원 가로수길
경북천년숲정원 가로수길 / 사진=경주시 공식블로그 최인준

정원에 들어서면 방문객을 가장 먼저 압도하는 것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숲길이다. 길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거울숲’은 경북천년숲정원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다.

맑은 실개천 위로 놓인 아담한 외나무다리와 양옆으로 도열한 메타세쿼이아 군락이 바람 없는 날에는 수면에 그대로 투영되어, 마치 데칼코마니 같은 비현실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과거 드라마 <강덕순 애정 변천사>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주말이면 인생 사진을 남기려는 이들로 긴 줄이 늘어서기도 한다.

거울숲을 지나면 안쪽으로는 칠엽수, 바깥쪽으로는 메타세쿼이아가 4열로 늘어선 장대한 가로수길이 펼쳐진다. 빽빽한 나뭇잎이 터널을 이루어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도 이곳에서는 부드러운 빛의 조각으로 부서진다. 흙길을 따라 걸으며 짙은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스트레스가 씻겨나가는 듯하다.

신라의 이야기와 자연이 어우러진 주제 정원

경북천년숲정원 천년의 미소원
경북천년숲정원 천년의 미소원 / 사진=경주시 공식블로그 최인준

경북천년숲정원의 진정한 매력은 다채로운 주제 정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서라벌정원’은 신라의 역사와 경주의 지형을 조경에 섬세하게 녹여낸 공간이다.

특히 김유신 장군과 단석산의 설화를 모티브로 조성한 암석원은 기암괴석 사이로 피어난 야생화들이 어우러져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준다.

긴 연못을 수양버들이 부드럽게 감싸 안은 ‘버들못정원’은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운치를 자아낸다.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와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이 외에도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분재원, 계절마다 다른 색의 꽃이 만발하는 초화원 등 총 13개의 테마 정원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발길을 이끈다.

이 곳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온다면, 보리사 입구 하차후 도보 5분 정도 걸으면 된다.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기준으로 11번, 711번 버스를 탈 경우에는 25분 정도 소요된다.

경주 여행의 새로운 쉼

경북천년숲정원 왕의 정원
경북천년숲정원 왕의 정원 / 사진=경주시 공식블로그 최인준

경주의 다른 주요 유적지들이 천년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경북천년숲정원은 수십 년간 가꿔온 ‘생태’와 ‘휴식’이라는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입장료와 주차료 없이 누릴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방문 계획이 있다면 최신 운영 정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하절기(3~10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11~2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중요한 것은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무일이라는 점이다. 단,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다음 평일에 쉰다.

또한 1월 1일과 설날, 추석 당일에도 휴무한다. 쾌적한 환경 보존을 위해 정원 내 반려동물 출입, 자전거 및 킥보드 이용, 취사와 음주는 금지되니 유의해야 한다. 차로 10분 거리에 동궁과 월지, 월정교, 선덕여왕릉 등이 있어 경주 여행 코스에 자연과 함께하는 쉼표로 포함시키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오랜 연구의 역사를 품고 마침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경북천년숲정원. 이곳은 더 이상 비밀의 숲이 아니다. 경주를 찾는 모든 이에게 아낌없이 그늘을 내어주고, 자연이 주는 가장 순수한 위로를 건네는 우리 모두의 정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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