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운곡서원
380년 은행나무가 지키는 고요한 가을의 절정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잎이 고즈넉한 서원 마당으로 융단처럼 쏟아져 내린다. 인파의 소음 대신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만이 가득한 공간. 경주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만큼, 시간의 흐름마저 더디게 느껴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곳의 진정한 가치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넘어, 한 세기를 훌쩍 넘는 기다림과 회복의 역사 속에 숨겨져 있다. 단순한 가을 명소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진 더 깊은 이야기를 마주할 시간이다.
운곡서원
“단풍보다 황홀한 은행나무 절경 명소”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사라길 79-13에 위치한 운곡서원은 고려 태사 권행과 조선시대 인물인 권산해, 권덕린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교육의 전당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찾는 이유는 서원을 오롯이 지키고 선 압도적인 은행나무 때문이지만, 이 공간의 본질은 역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통과해 낸 한 문중의 끈질긴 정신에 있다.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 은행나무는 그저 오래된 나무가 아니다. 수령 약 380년을 헤아리는 이 나무는 경상북도가 공식 지정한 보호수로서, 단순한 자연물을 넘어 서원의 역사를 증언하는 살아있는 기념비다.
10월 말이 되면 짙은 녹색 잎은 서서히 황금빛으로 변모하기 시작해 11월 초순에는 그 절정을 맞이하며, 찾는 이들에게 잊지 못할 가을의 한 장면을 선물한다.
흥선대원군의 칼날을 피해 108년 만의 부활

운곡서원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강력한 왕권 강화를 추진하던 흥선대원군이 1868년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라는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 운곡서원 역시 그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안동 권씨 문중은 선조를 기리는 정신의 맥을 놓지 않았다. 훼철된 지 108년이 흐른 1976년, 마침내 후손들의 간절한 염원과 노력으로 현재의 자리에 서원을 복원하기에 이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곳이 신라시대의 사찰인 ‘밀곡사(密谷寺)’가 있던 터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천년고도 경주답게, 신라의 불교 문화와 조선의 유교 문화가 한 공간에서 시간을 달리하며 겹쳐진 역사의 층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원은 선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경덕사’를 가장 높은 곳에 두고, 그 아래로 유생들이 학문을 논하던 강당 ‘정의당’과 기거하던 ‘동재’와 ‘서재’를 배치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붐비는 황리단길 대신 얻는 사색의 시간

경주 여행이라 하면 흔히 대릉원의 고분 능선이나 첨성대, 그리고 젊은 감각으로 가득한 황리단길을 떠올린다. 이들 명소는 저마다의 매력이 뚜렷하지만,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발 디딜 틈 없는 인파와 높은 상업성으로 인해 고즈넉한 여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운곡서원은 경주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강동면 청수골에 자리한 덕분에, 찾는 이들에게 온전한 평화와 사색의 시간을 허락한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비어있음’과 ‘고요함’이다. 소형차 80대를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무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서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도심의 소음은 완벽히 차단된다.

입장료 또한 무료여서, 누구든 부담 없이 방문해 계절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경주역에서 50번 버스를 탄 후 272번으로 환승해야 하는 다소의 번거로움이 있어, 가급적 자가용 이용을 추천한다.
가을의 서원은 한 폭의 그림 같지만, 다른 계절의 매력도 못지않다. 신록이 움트는 봄에는 생동하는 자연의 기운을, 짙은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에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망중한을 즐길 수 있다.
벤치에 앉아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정의당 툇마루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복잡했던 마음에 평온이 찾아온다.
바쁜 일상에 쉼표가 필요할 때, 화려한 볼거리 대신 마음을 채우는 깊이 있는 여행을 원한다면 운곡서원은 최고의 선택지가 될 것이다.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역사의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피어난 이곳에서, 진짜 ‘쉼’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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