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지리산 삼성궁
1,500개 돌탑이 만든 신화의 성전

지리산 깊은 자락, 해발 850m 고지대에 현실의 풍경이라 믿기 어려운 거대한 돌탑의 왕국이 존재한다. 마치 고대 문명의 유적이나 신화 속 세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곳. 11월 초순, 늦가을 단풍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면 그 신비로움은 극에 달한다.
수많은 이들이 이 이국적인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찾지만,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1,500여 개의 돌탑 하나하나에 민족의 염원과 수행자의 땀이 서린 살아있는 성전이다. 우리가 몰랐던 지리산의 비밀, 그 장엄한 수행의 현장으로 들어간다.
“1,500개의 돌탑,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이 신비로운 공간의 공식 명칭은 배달성전 삼성궁이다. 정확한 주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삼성궁길 2에 위치하며, 이름 속 ‘삼성’은 우리 민족의 시조인 환인, 환웅, 그리고 단군을 의미한다. 즉, 이곳은 삼성을 모시는 ‘배달 민족의 성전’이다.
삼성궁의 역사는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풀선사 강민주가 민족 고유의 정통 도맥인 ‘선도’를 전수하고, 고조선 시대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 ‘소도’를 현대에 복원하겠다는 염원 하나로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터를 잡았다.
이곳은 단순한 문화재 복원 공간을 넘어, 배달민족 고유의 정신문화를 되찾고 ‘홍익인간’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40여 년의 염원이 축적된 곳이다.
돌탑이 아니라 ‘원력 솟대’라 부르는 이유

삼성궁에 들어서는 순간, 방문객을 압도하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돌탑들이다. 현재까지 약 1,500여 개에 이르는 이 돌탑들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이를 ‘원력 솟대’라고 부른다.
고대 삼한시대의 ‘소도’는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기 위해 높은 장대 위에 기러기 등을 조각해 올린 ‘솟대’를 세워 일반인의 접근을 막았다. 삼성궁은 이 솟대를 돌탑의 형태로 재해석했다. 이곳의 선사와 수행자들이 민족의 염원을 담아 직접 돌을 나르고 쌓아 올린 수행의 결과물이자 상징물인 것이다.

이 ‘원력 솟대’를 쌓는 궁극적인 목표는 3,333개에 달한다. 이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 우리 고유의 신앙 문화를 시각적으로 복원하고 민족정신을 바로 세우겠다는 깊은 다짐의 표현이다.
이 때문에 삼성궁은 불교의 사찰이나 유교의 서원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다. 이곳은 무예, 음악, 예술이 함께 어우러지는 전인적 수련의 장이기도 하다.
지리산 850m 순례길, 방문 전 필수 확인 사항

이 장엄한 공간을 마주하기까지의 여정은 ‘관광’보다는 ‘순례’에 가깝다. 지리산 청학동 매표소에서부터 약 1.5km의 산길을 걸어 올라야 비로소 삼성궁의 입구에 닿을 수 있다. 11월 초순부터 중순까지,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 숲 사이로 솟아오른 돌탑들의 행렬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방문을 계획한다면 운영 정보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삼성궁의 입장료는 성인 8,000원, 청소년 5,000원, 어린이 4,000원이다. 주차 요금은 별도로 부과되지 않아(무료) 자가용 이용이 편리하다.
관람 시간은 계절별로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하절기(봄, 여름, 가을)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나, 동절기(11월~2월)에는 오후 5시에 마감한다. 특히 입장 마감은 마감 시간 1시간 전(동절기 기준 오후 4시)에 조기 종료되므로, 늦가을 정취를 여유롭게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른 오전에 출발하는 것이 좋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하동버스터미널에서 ‘묵계’ 정류장으로 향하는 군내버스(15-1, 15-2 등)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 버스는 하루 운행 횟수가 극히 적어 배차 간격이 매우 길다. 출발 전 버스 시간표 확인은 물론, 돌아오는 마지막 차 시간을 반드시 확인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단순한 풍경을 넘어, 40년의 염원을 마주하다

배달성전 삼성궁은 그저 이국적인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지리산 해발 850m 고지에서 40년 넘게 묵묵히 민족의 정신과 ‘홍익인간’의 이념을 지키며 쌓아 올린 수행의 공간이다.
돌 하나, 솟대 하나마다 담긴 염원과 수행의 흔적은 조용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11월, 마지막 가을 단풍이 지리산 능선을 감쌀 때, 우리 민족의 근원과 철학이 담긴 이 특별한 성전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그곳에서 당신이 찾던 여행의 진짜 의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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