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송림공원, 조선 영조가 만든 방풍림의 기적

섬진강은 담백하다. 잎을 떨군 나무들 사이로 강물이 반짝이고, 백사장 위로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는 이 계절에 유독 선명하게 드러나는 풍경이 있다. 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짙은 초록빛 소나무 숲이 그것이다.
이 숲은 우연히 자란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도호부사가 바람과 모래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손수 조성한 인공림이며, 그 기능과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약 2km에 걸쳐 섬진강 강변 백사장을 끼고 이어지는 이 송림은 지금도 하동 주민들의 일상 산책로이자 사색의 공간으로 살아 숨 쉰다. 강물과 백사장, 그리고 노송이 한 폭의 그림처럼 겹치는 지금 가장 솔직한 표정을 보여준다.
1745년 도호부사 전천상이 조성한 천연기념물 숲

하동송림공원(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 일원)은 섬진강 남서쪽 강변 백사장 위에 형성된 마을숲으로, 천연기념물 제445호 ‘하동 섬진강 백사청송’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장소다.
조선 영조 21년인 1745년, 당시 도호부사 전천상이 광양만 해풍과 섬진강 모래바람으로부터 하동읍 주거지를 보호하기 위해 소나무 약 3,000그루를 심은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마을을 지키는 방풍·방사림으로 설계된 인공림이었으며, 그 목적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1983년 경상남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된 뒤 2005년 국가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격상되며 그 보존 가치가 공식 인정된 셈이다.
수령 약 300년 노송 800여 그루가 만드는 2km 숲길

숲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다. 소나무 숲 길이만 약 2km에 달하며, 숲 면적은 약 72,200㎡(약 2만 1,850평)에 이른다. 현재 800여 그루(일부 자료에는 900여 그루)의 노송과 후계목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으며, 1745년 조성 기준으로 2026년 현재 약 280년이 경과해 수령 약 300년에 가까운 나무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나무마다 일련번호가 부여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구역별로 3년 단위 자연휴식년제를 시행해 생태 보호에 힘쓰고 있다.
강물과 백사장, 노송이 나란히 이어지는 평탄한 숲길은 경사가 없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나 노년층 산책에도 무난하다.
달집태우기 전통과 섬진강 트레킹 코스의 출발점

이 숲은 경관만으로 이름난 곳이 아니다. 과거에는 아낙네들의 화전놀이 장소였고, 앞 백사장은 내륙 해수욕장으로 활용되었다.
1880년경에는 목조 기와 정자인 하상정(河上亭)이 사정(射亭)으로 설치되어 궁도장으로도 쓰였으며, 지금은 천연기념물 지정 이후 정자만 남아 역사의 흔적을 전하고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백사장에서 군민의 소망을 담은 달집태우기 행사가 열려 지역 공동체 축제로 이어진다. 한편 하동송림은 하동포구공원, 갈대밭, 선소공원, 주교천입구를 지나 수변공원까지 이어지는 약 14.8km 섬진강 트레킹 코스의 출발·경유 지점이기도 하다.
무료 개방 공원, 하모니 ICT 타워와 주변 연계 여행

하동송림공원은 도시근린공원으로 별도 입장료 없이 이용할 수 있으며, 주차 역시 무료로 소개된다. 최근에는 송림과 하동공원을 연결하는 하모니 ICT 타워 및 전망대가 조성되어 송림과 섬진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공원 입구 인근에는 무당바위 복원과 복합 문화공간도 새로 들어섰다.
하동읍 시가지와 인접해 있어 도보나 시내버스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방문 후에는 화개장터, 쌍계사, 최참판댁 등 하동 대표 명소와 연계해 하루 코스로 묶기에도 좋다.

하동송림은 재난을 막으려는 한 관리의 뜻이 280년을 이어온 살아있는 유산이다. 강바람과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노송들이 빚어내는 고요함은 어떤 인공 공간도 흉내 낼 수 없다.
섬진강 물빛이 가장 맑게 빛나는 계절, 노송 사이로 느리게 걸으며 오래된 숲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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