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지만 함부로 못 들어간다”… 단풍 절정 맞은 서울 도심 속 100년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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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숲 홍릉수목원
2천여 종 품은 서울 도심의 명품숲

황릉숲 가을
황릉숲 가을 / 사진=숲나들e

서울 도심 한복판, 가을 단풍이 붉게 타오르는 지금, 단돈 1원도 받지 않는 100년 역사의 숲이 있습니다. 입장료도, 주차비도 ‘무료’라는 말에 가볍게 방문을 계획했다면 잠시 멈춰야 합니다. 이곳은 자칫 달력만 보고 찾아갔다가는 굳게 닫힌 문 앞에서 헛걸음하기 십상인, 아주 특별한 규칙을 가진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국립산림과학원이 운영하는 홍릉수목원입니다. 이곳은 일반 공원이나 유원지가 아닌,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시험림’입니다. 이 까다로운 정체성이 방문객에게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규칙이 됩니다.

서울 미래유산이자 100대 명품숲

황릉숲 황우의길
황릉숲 황우의길 / 사진=숲나들e

이토록 까다로운 규칙을 감수하고서라도 홍릉수목원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이곳이 지닌 압도적인 역사와 가치 때문입니다. 공식 주소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 57로, 이곳의 이름 ‘홍릉(洪陵)’은 본래 명성황후의 능호였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시해된 명성황후는 1897년 이곳 천장산 자락에 안장되었습니다. 이후 1919년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경기도 금곡(현재의 홍유릉)으로 합장 이장되었고, 그 빈터에 1922년 임업시험장이 들어서며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이 탄생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홍릉숲은 수많은 공식 지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정치역사 분과’에서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으며, 산림청이 지정하는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이자 ‘국가산림문화자산’이기도 합니다. 방문객은 지금 ‘보물’로 지정된 숲길을 걷는 셈입니다.

평일과 주말, 완전히 다른 방문

홍릉수목원 해설탐방
홍릉수목원 해설탐방 / 사진=숲나들e

이곳은 ‘연구림’이기에 방문 정책이 평일과 주말로 극명하게 나뉩니다.

평일(화요일~금요일) 방문: 100% 사전 예약제 평일에는 ‘자유 관람’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오직 ‘숲해설가와 함께하는 숲해설 프로그램’에 사전 예약한 사람만 입장이 허용됩니다. 예약 없이 평일에 방문하면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합니다.

예약은 국립산림과학원 공식 웹사이트(www.kfri.go.kr)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전화 예약은 받지 않습니다. 탐방 예정일 하루 전(전일) 오후 5시까지 예약을 마쳐야 합니다. 숲해설은 3월부터 11월까지 하루 3회(오전 10:30, 오후 1:30, 오후 3:30) 진행되며 약 90분이 소요됩니다.

홍릉수목원 산책로
홍릉수목원 산책로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말(토요일~일요일) 방문: 예약 없는 자유 관람 주말은 홍릉수목원이 일반 대중에게 자유롭게 문을 여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별도의 예약 없이 누구나 방문하여 41.8헥타르(약 12만 6천 평)에 달하는 거대한 숲을 거닐 수 있습니다.

운영 시간은 계절별로 다릅니다. 하절기(3월~10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11월~2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됩니다. 주말에도 예약 없이 현장에서 참여할 수 있는 숲해설(오전 10:30, 오후 2:00)이 운영됩니다.

휴무일과 주차 정보

황릉숲
황릉숲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홍릉수목원 방문 계획 시 가장 실패하기 쉬운 두 가지 함정은 ‘휴무일’과 ‘주차’입니다.이곳의 정기 휴무일은 매주 월요일, 5월 1일(근로자의 날), 그리고 모든 법정공휴일입니다. 신정, 설과 추석 연휴, 삼일절, 어린이날, 한글날 등 달력의 모든 ‘빨간 날’에 문을 닫습니다.

가장 중요한 조항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법정공휴일인 경우에도 휴무라는 것입니다. 만약 11월 첫째 주 일요일이 특정 공휴일과 겹친다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숲은 열리지 않습니다.

홍릉수목원은 방문객을 위한 주차 공간을 전혀 제공하지 않습니다(주차 불가). 연구원 방문 차량 외에는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반드시 인근 공영주차장을 이용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합니다. 6호선 고려대역 3번 출구에서 도보 약 10분, 1호선 청량리역에서 버스 환승 등이 편리합니다. 기타 문의 사항은 전화(02-961-2777)로 가능합니다.

‘공원’이 아닌 ‘살아있는 연구실’

홍릉수목원
홍릉수목원 / 사진=숲나들e

이 엄격한 규칙들은 홍릉수목원이 서울숲이나 서울식물원 같은 ‘도시 공원’이 아니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이곳을 산림과학연구시험림으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며 환경 생태 보존의 필요성이 있는 곳”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 공원에서 허용되는 거의 모든 활동이 금지됩니다. 숲의 정숙 유지를 위해 음식물이나 주류 반입은 물론, 돗자리를 펴는 행위도 불가능합니다.

반려동물 역시 입장이 불가하며, 자전거, 운동기구, 심지어 사진 촬영용 삼각대조차 반입 금지 물품입니다. 2002년 기준 2,035종의 식물 유전자원이 보존된 ‘살아있는 연구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홍릉수목원 풍경
홍릉수목원 풍경 / 사진=숲나들e

홍릉수목원은 서울 도심에서 100년의 시간과 2천여 종의 생명을 품고 있는 ‘서울 미래유산’이자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나들이 장소가 아닌, 엄격한 규칙 속에서 보존되는 우리의 귀중한 산림 자산입니다.

방문을 계획한다면, 지금 당장 달력을 펴고 내가 가려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빨간 날’은 아닌지, 그리고 주차장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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