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백월산
도시·평야·바다를 동시에 담는 정상 뷰

산의 정상은 으레 굵은 땀방울과 거친 숨을 대가로 치러야만 허락되는 성역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충남 홍성에는 그 통념을 유쾌하게 배반하는 곳이 있다.
등산화 대신 운동화를, 등산 스틱 대신 자동차 키를 쥐고 단 몇 분 만에 세상의 지붕에 설 수 있는 곳. 이곳은 산을 ‘정복’하는 곳이 아니라, 산이 선사하는 최고의 풍경과 사색을 ‘마주하는’ 곳, 바로 백월산이다.
홍성 백월산

백월산의 공식 해발 고도는 394.3m다. 결코 만만치 않은 높이지만, 이 숫자는 이곳에서 무의미하다. 진짜 매력은 정상 코앞까지 잘 포장된 도로가 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상으로 향하는 임도는 좁고 가파르다. 마주 오는 차라도 만나면 아찔한 순간이 연출될 수 있어 초보 운전자에게는 긴장을 요구하지만, 이 짧은 스릴마저 정상의 풍경을 위한 극적인 서막처럼 느껴진다.

정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0여 미터,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산책을 마치면 거짓말 같은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홍성읍의 불빛이 아기자기한 도시의 미니어처를 그리고, 북쪽으로는 광활한 내포평야가 막힘없이 펼쳐져 가슴을 뻥 뚫어준다.
그리고 마침내 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은빛으로 반짝이는 서해의 천수만이 거대한 수평선을 그리며 대미를 장식한다. 도시와 농촌, 그리고 바다라는 세 가지 이질적인 풍경이 하나의 시선 안에 들어오는 이 장대한 조망은, 백월산이 숨겨진 보석이라 불리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한다.
풍경 너머의 이야기

백월산의 진가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풍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흰 달’이라는 이름에는 백제 멸망 후, 마지막 불꽃을 태웠던 부흥군의 처절한 역사가 깃들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인근 주류성을 거점으로 항전하던 백제 왕족과 군사들이 밤마다 이곳에 올라 밝은 달을 보며 재기의 희망을 다졌다고 전해진다.
그들이 바라보았던 저 달빛 아래 풍경은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나라를 잃은 이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보았을 한 줄기 ‘백월(白月)’은 희망이자 동시에 절망의 다른 이름이었을지 모른다. 이처럼 백제 부흥운동의 역사를 알고 정상에 서면, 평범했던 풍경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가 되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이는 홍성의 또 다른 명산인 용봉산이 아기자기한 암릉을 오르는 등산의 재미를 준다면, 백월산은 그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역사적 사색이라는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지점이다.
백월산으로 가는 가장 현명한 방법

백월산 정상으로 가려면 내비게이션에 ‘엘림가든’(홍성읍 백월로117번길 20-68)을 검색하는 것이 가장 수월하다. 입장료와 주차료는 모두 무료다. 다만, 길이 매우 좁아 운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며, 해가 진 후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바쁜 일상 속, 단 한 시간의 여유만으로 자연의 광활함과 역사의 아련함을 동시에 느끼고 싶을 때, 백월산은 가장 쉽고 빠른 해답이 되어줄 것이다. 땀 대신 사색을, 도전 대신 위안을 얻어 가는 곳, 그곳이 바로 백월산의 진짜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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