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선굴
5억 년 시간이 만든 완벽한 여름 피서지

찌는 듯한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시원한 그늘 한 점이 간절해지는 계절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문을 여는 순간 서늘한 공기가 훅 끼쳐오는 거대한 ‘천연 냉장고’로의 탈출을 꿈꾼다.
놀랍게도 그런 상상 속 공간이 현실에 존재한다. 바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서늘한 냉기를 뿜어내는 환선굴이다. 하지만 이곳을 단지 시원한 여름 피서지로만 정의한다면 그 가치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5억 년이 넘는 시간이 빚어낸 경이로운 풍경과 지구의 역사를 품은 이곳은 단순한 동굴을 넘어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자연사 박물관 그 자체다.
상상 초월의 규모, 시간이 빚어낸 지하 궁전

국내 최대 규모의 석회암 동굴인 환선굴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신기면 환선로 800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동굴의 존재가 처음으로 문헌에 기록된 것은 1662년, 허목 선생이 저술한 『척주지』를 통해서다.
무려 360여 년 전부터 그 존재가 알려졌을 만큼 유서 깊은 곳이지만, 그 형성 시기는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다. 약 5억 3천만 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형성된 퇴적암층이 오랜 세월 지하수의 용식 작용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학술적, 자연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이리 동굴지대 전체가 1966년 6월 17일, 국가 지정 문화재인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엄격하게 보호받고 있다.

동굴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외부 세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 펼쳐진다. 입구의 폭은 14m, 높이는 10m에 달하며 안으로 들어갈수록 폭은 최대 100m, 높이는 30m까지 확장되어 압도적인 공간감을 선사한다.
총 길이는 무려 6.2km에 달하지만, 자연유산 보존을 위해 일반에게는 약 1.6km 구간만 개방된다. 이 짧지 않은 탐방로를 걷는 내내 관람객은 자연이 수억 년에 걸쳐 조각한 거대한 예술 작품들을 마주하게 된다.
‘미녀상’, ‘마리아상’, ‘옥좌대’ 등 저마다의 이름과 이야기를 품은 종유석과 석순, 석주들이 신비로운 조명 아래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계절과 상관없이 연중 12℃를 유지하는 서늘한 내부 온도는 한여름의 더위를 완벽하게 잊게 해준다. 동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물줄기는 작은 폭포를 이루고, 그 물방울이 천장에 매달려 또 다른 종유석을 키워내는 현재진행형의 창조 현장을 목격하는 것은 환선굴 탐방의 백미다.
살아있는 생태계, 희귀 생명의 보금자리

환선굴의 가치는 비단 지질학적 경이로움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곳은 빛이 거의 들지 않는 극한의 환경에 적응한 독특한 생명체들의 보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동굴 내부에서는 총 47종의 동물이 발견되었으며, 그중 ‘환선장님좀딱정벌레’를 포함한 4종은 오직 이곳에서만 발견되었거나 환선굴이 최초 발견지(모식산지)로 기록된 매우 희귀한 고유종이다.
이는 환선굴이 외부와 격리된 채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유지해 온 ‘살아있는 실험실’임을 증명하는 중요한 단서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둠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이 작은 생명들의 흔적을 상상하며 생명의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환선굴 200% 즐기기, 모노레일과 관람 팁

이처럼 엄청난 규모와 가치를 지닌 환선굴이지만, 접근성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2010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모노레일 덕분에 남녀노소 누구나 비교적 쉽게 동굴 입구까지 다다를 수 있다.
매표소에서 동굴 입구까지는 약 1.3km의 가파른 오르막길인데, 모노레일을 이용하면 승강장까지 800m를 걸어간 뒤 편안하게 정상부까지 이동할 수 있다. 환선굴 입장료는 어른 기준 4,500원이며, 청소년 및 어린이, 단체 등은 할인 요금이 적용된다.

모노레일 이용료는 입장료와는 별도로 부과된다. 13세 이상 성인은 왕복 7,000원, 어린이는 3,000원이다. 체력 안배를 위해 올라갈 때는 편도(성인 4,000원)를 이용하고 내려올 때는 숲길을 따라 걸어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운영시간은 하절기(3월~10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하나, 매표는 4시 30분에 마감되니 여유롭게 도착하는 것이 좋다. 정기 휴무일은 매월 18일은 휴무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만약 18일이 공휴일이라면 그 다음 날인 평일에 쉰다.
또한 모노레일은 정비 시 운행이 중단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환선굴(033-541-9266)에 전화해 운행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현명하다. 주차장은 무료로 이용 가능하며 매우 넓게 조성되어 있다.

5억 3천만 년의 시간이 응축된 지하 세계로의 탐험. 환선굴은 단순한 피서지를 넘어 우리에게 지구의 역사와 생명의 신비, 그리고 자연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깨닫게 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번 여름, 무더위를 피해 떠나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단순한 시원함을 넘어 깊은 감동과 지적 호기심까지 채워줄 삼척 환선굴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는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경이로운 지하 궁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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