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6천 평이 은빛으로 물든다”… 천년 성곽 위로 펼쳐지는 억새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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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화왕산
억새와 함께 걷는 천년의 능선

화왕산 가을 억새
화왕산 가을 억새 / 사진=창녕 공식블로그 서정호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산등성이를 온통 뒤덮은 은빛 억새가 석양에 물들어 금빛으로 출렁이는 장관. 하지만 이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는 1,500년의 역사가 숨 쉬고 있다.

경남 창녕의 화왕산은 단순한 억새 명소를 넘어, 시간을 거슬러 걷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다. 모두가 억새만 이야기할 때 우리가 놓치고 있던 화왕산의 진짜 매력을 찾아 성곽 위로 올라가 본다.

“광활한 대평원, 가야의 숨결을 품다”

창녕 화왕산 가을
창녕 화왕산 가을 / 사진=창녕 공식블로그 서정호

화왕산군립공원은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말흘리 35(자하곡 주차장 기준) 일원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의 심장은 단연 해발 756.6m 정상부에 드넓게 펼쳐진 억새 평원이다.

약 5만 6천 평, 축구장 26개를 합친 것보다 넓은 이 평원은 가을이 되면 온통 은빛 물결로 가득 차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 평원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둘레 약 2.7km의 견고한 석성을 주목해야 한다.

창녕 화왕산
창녕 화왕산 / 사진=창녕 공식블로그 서정호

바로 국가 지정 문화재 창녕 화왕산성(사적 제64호)이다. 이 성은 정확한 축조 연대는 확인되지 않으나, 출토된 유물 등을 근거로 5~6세기 가야 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가파른 산의 지세를 그대로 활용해 성벽을 쌓아 올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방어 효과를 노린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험준한 산 정상에 이토록 거대한 성을 쌓았던 고대의 열망은 오늘날 우리에게 억새와 어우러진 최고의 트레킹 코스를 선물했다. 화왕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이끄는 의병의 중요 거점으로 활용되며 호국의 역사 현장이 되기도 했다.

맞춤형 코스 선택, 자하곡이냐 옥천이냐

창녕 화왕산 억새
창녕 화왕산 억새 / 사진=창녕 공식블로그 서정호

화왕산의 매력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시작점 선택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두 코스는 ‘자하곡’과 ‘옥천’ 매표소에서 시작된다. 현재 화왕산군립공원은 2012년부터 입장료와 주차료를 전면 폐지하여 누구나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다.

창녕읍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은 자하곡 주차장(창녕읍 말흘리 35, 378대 주차 가능) 코스는 가장 많은 등산객이 찾는 인기 경로이다. 초반 다소 가파른 구간이 있지만, 비교적 최단 거리로 억새 평원과 화왕산성 남문에 닿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옥천 주차장(창녕읍 옥천리 618-1, 550대의 넉넉한 주차 공간)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관룡사 방향을 거치게 되며, 기암절벽의 절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산행의 묘미를 더한다. 한 등산객은 “남문에서 오른쪽 성벽 길 초입은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가파르지만, 그 고비를 넘어서면 펼쳐지는 억새 풍경은 모든 힘듦을 잊게 한다”고 전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또 다른 즐길 거리

창녕 화왕산 분지
창녕 화왕산 분지 / 사진=창녕 공식블로그 서정호

창녕 화왕산성 동쪽 외곽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한때 드라마 ‘허준’의 메인 세트장이었던 이곳은 이후 ‘대장금’, ‘상도’ 등 수많은 사극과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비록 지금은 세트장 일부만 남아있지만, 주변으로 드넓게 펼쳐진 진달래 군락지는 봄이 되면 억새 평원과는 또 다른 분홍빛 장관을 연출한다.

방문 최적기는 단연 10월 중순에서 말 사이로, 억새가 만개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출발 전 창녕군 문화관광 홈페이지의 ‘소식 누리집 > 영상’ 메뉴를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곳에서 실시간으로 억새 개화 상황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어 헛걸음할 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은빛 억새의 춤사위와 천오백 년 역사의 무게가 공존하는 곳. 이번 가을, 그저 아름다운 풍경을 넘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직접 걸어보는 특별한 산행을 화왕산에서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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