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만 이런 고요가 있어요”… 대청호 절벽에 숨겨진 고즈넉한 겨울 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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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 현암사, 구룡산 중턱에서 만나는 고요

청주 현암사 겨울 풍경
청주 현암사 겨울 풍경 / 사진=현암사

해가 짧은 겨울 오후, 산길을 오르는 발걸음이 가빠진다. 계단을 백여 개 넘게 오르고 나면 비로소 마주하는 공간이 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시야 가득 펼쳐지는 수평선이 숨을 멈추게 한다. 대청호가 발아래 누워 있고, 저 멀리 댐의 수문이 작은 점처럼 보인다.

고려 후기 건축 양식을 간직한 이 사찰은 명확한 창건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407년 백제 전지왕 시절, 665년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중창했다는 설화가 전해질 뿐이다. 조선시대 폐사되었다가 광복 후 괴산 출신 김사익이 중건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절벽에 매달린 다람쥐처럼 위태롭게 자리한 모습에서 이름을 얻은 현암사는 겨울이 되면 더욱 고요해진다. 외부 소음이 닿지 않는 구룡산 중턱, 110cm 석조여래좌상과 팔각 부도가 세월을 품은 채 방문객을 맞는다.

백제 설화와 고려 건축이 만난 천년 터

청주 현암사 내부
청주 현암사 내부 / 사진=현암사

현암사(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대청호반로 149)는 구룡산 중턱 절벽 위에 자리한다. 아홉 줄기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품은 구룡산은 대청호를 내려다보는 천혜의 입지를 제공한다. 사찰 이름은 다람쥐가 나뭇가지에 매달린 모습에서 유래했으며, 다람절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창건 설화는 세 가지가 전한다. 407년 백제 전지왕 때 선경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 665년 신라 문무왕 5년 원효대사가 중창했다는 기록, 고구려 선경대사가 세웠다는 전승이다. 건축물 양식을 분석한 결과 고려 후기 실제 개창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큰 번영을 누리지 못한 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광복 후 괴산 출신 김사익이 중건을 시작했고, 1986년 도공 주지가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복원이 이뤄졌다. 1993년까지 대웅전, 용화전, 삼성각을 건립하며 현재의 모습을 완성했다. 1988년 5월 18일 전통사찰 20호로 지정되어 공식 문화유산 지위를 얻었다.

용화전 석조여래좌상과 팔각 부도의 조화

현암사 대웅보전
현암사 대웅보전 / 사진=ⓒ한국관광공사 강윤구

경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용화전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이다. 높이 110cm의 이 불상은 얼굴이 넓고 둥글며 상호가 원만하여 자비로운 인상을 준다. 손 모양은 선정인을 취하고 있어 고요한 명상의 자세를 보여준다. 백제 선경대사가 다듬었다는 설화와 고려 후기 제작 추정이 함께 전해진다.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불상과 탱화, 동종이 봉안되어 있다.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산신, 칠성, 독성을 모신다. 요사채는 2층 구조로 1978년 건립 후 1986년부터 1993년까지 증축되었다.

경내를 벗어나면 팔각원당형 부도 1기가 남아 있다. 상륜부가 연꽃 봉오리 형식을 띠고 있어 조선 전기 석조 양식의 특징을 보인다. 일부 자료에서는 조선 후기 제작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공식 문화유산 정보는 조선 전기 특징을 강조한다.

대청호 전망과 구룡산 장승 공원 산책

청주 현암사 풍경
청주 현암사 풍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강윤구

사찰 마당에서 뒤를 돌아보면 대청호 전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청댐 수문과 청남대 위치까지 일목요연하게 파악된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진행된 대청댐 건설로 형성된 이 인공호수는 사찰에 독특한 경관을 선사했다. 절벽 위에 선 듯한 입지 덕분에 호수 위 섬들과 수면이 만드는 풍경이 더욱 극적이다.

사찰에서 구룡산 정상 삿갓봉까지는 도보로 30~50분 거리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500개가 넘는 장승이 늘어선 장승 공원을 만난다. 삿갓봉에는 해돋이대장군과 여장군 장승이 세워져 있으며, 길을 따라 쌓인 50개 이상의 돌탑이 이어진다. 방문객들이 직접 참여해 쌓은 돌탑은 산행의 또 다른 재미를 더한다.

현암사에서 100~200m 거리에 현암정 휴게소가 위치한다. 팔각 정자 형태의 이 공간에서는 대청호 파노라마 뷰를 감상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사찰 내부에는 별도 음식점이 없어 문의 읍내나 대청댐 주변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

겨울 산행과 함께하는 문화유산 답사

청주 현암사 석탑 속 부처님
청주 현암사 석탑 속 부처님 / 사진=ⓒ한국관광공사 강윤구

현암사는 09:00부터 18:00까지 운영되며 연중무휴로 개방된다. 입장료는 없고 5분 거리의 현암사 주차장에 주차 후 대청호 풍경을 보며 걸어가는 걸 추천한다. 겨울철에는 계단과 산길이 결빙될 수 있어 미끄럼 방지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청주시 중심부에서 자동차로 30~40분, 대전 중심부에서는 40~50분이 소요된다. 경부고속도로 청원IC에서 좌회전 후 척산-문의 방향으로 진입하면 되며, 대전 방면에서는 신탄진IC를 거쳐 대청댐 방향으로 이동한다.

인근 연계 코스로는 대청댐(2~3km, 10분), 청남대(3~5km, 15분), 문의 문화재단지(15~20km, 25분)가 있다. 대청댐 물문화관에서는 댐 건설 역사와 수자원 홍보 전시를 관람할 수 있으며, 청남대는 대통령 별장 역사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2003년 일반에 개방되었다.

청주 현암사 원경
청주 현암사 원경 / 사진=현암사

구룡산 중턱에 자리한 현암사는 고려 후기 건축 양식과 조선시대 석조 유물이 조화를 이룬 공간이다. 110cm 석조여래좌상의 원만한 상호와 팔각 부도의 연꽃 봉오리 상륜부는 시대를 넘어 이어진 신앙의 흔적을 보여준다.

겨울 산사의 고요함을 경험하고 싶다면 1월 한겨울에 현암사로 향해 대청호 절벽 위에서 맞는 적막을 느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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