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지만 주말엔 예약 없인 못 들어갑니다”… 50년 만에 열린 3만 평 무료 단풍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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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개방된 익산 아가페정원
황금빛 메타세쿼이아와 공작단풍의 조화

아가페정원 메타세쿼이아길
아가페정원 메타세쿼이아길 / 사진=익산시공식블로그

가을이 깊어지며 전국이 붉고 노란빛으로 물드는 지금, 유독 선명한 황금빛으로 방문객을 압도하는 ‘비밀의 정원’이 있다. 반세기 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다가 2021년 마침내 문을 연 전북 익산의 아가페정원이 그 주인공이다.

이곳은 약 3만 평 규모의 숲 전체가 입장료와 주차비 모두 ‘무료’로 운영되는, 믿기 힘든 혜택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정보만 믿고 주말에 불쑥 찾아갔다가는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만 한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10월 말부터 11월 사이, 아가페정원은 방문객 폭증을 막고 고요한 관람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주말 및 공휴일 사전 예약제’라는 강력한 규정을 운영 중이다. 50년 만에 열린 황금빛 정원을 놓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예약 전화번호부터 확인해야 한다.

50년간 노인들만 거닐던 ‘비밀의 정원’

아가페정원 가을 꽃밭
아가페정원 가을 꽃밭 / 사진=익산시공식블로그

아가페정원의 역사는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故 서정수 신부가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인 ‘아가페정양원’을 설립한 것이 시작이다. 서정수 신부는 시설 내 어르신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정원 곳곳에 나무를 심고 정성껏 가꾸기 시작했다.

이 숲은 지난 50년간 오직 정양원 어르신들만을 위한 치유와 휴식의 공간이었다. 그렇게 반세기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깊이 있는 숲은 인위적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긴다.

익산 아가페정원
익산 아가페정원 / 사진=ⓒ한국관광공사 강시몬

하늘 높이 뻗은 메타세쿼이아, 섬잣나무, 향나무, 공작단풍 등 17종 1,416주의 수목이 3만 평 부지를 가득 채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숲을 더 많은 시민과 나누고자, 정원은 2021년 3월 ‘전라북도 제4호 민간정원’으로 등록하며 50년 만에 일반에 개방되었다. 지금은 익산 9경 중 하나이자 익산 시티투어 코스에 포함될 정도로 지역의 대표 힐링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황금빛 메타세쿼이아와 진홍빛 공작단풍의 조화

아가페정원 가을
아가페정원 가을 / 사진=ⓒ한국관광공사 강시몬

아가페정원의 가을은 거대한 팔레트와 같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황등면 율촌길 9에 위치한 이 정원의 주인공은 단연 40m 높이의 거대한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10월 말부터 11월 초 사이, 길게 뻗은 산책로 양옆의 나뭇잎들은 일제히 황금빛으로 변신한다. 햇살이 좋은 날 방문하면, 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나뭇잎들이 터널 전체를 가득 채워 “마치 황금빛 융단 위를 걷는 듯하다”는 방문객들의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가페정원
아가페정원 / 사진=ⓒ한국관광공사 강시몬

하지만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황금빛 단색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연인 메타세쿼이아 주변에는 강렬한 조연들이 포진해 있다.

선명한 진홍빛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공작단풍’은 황금빛 배경 속에서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여기에 샛노란 은행나무와 차분한 갈색 톤의 섬잣나무까지 어우러져 색의 스펙트럼을 풍부하게 만든다.

만약 유명 단풍 명소인 내장산이 ‘붉은색’으로 대표된다면, 아가페정원은 황금빛과 붉은빛, 노란빛이 한 공간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이다.

주말 방문, ‘2주 전 전화 예약’ 필수

아가페정원 가을꽃
아가페정원 가을꽃 / 사진=익산시공식블로그

이 모든 풍경을 무료로 즐길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관문이 남았다. 바로 ‘예약’이다.

아가페정원은 평일에는 예약 없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단풍객이 몰리는 주말 및 공휴일에는 반드시 2주 전 전화(063-843-7294)로 사전 예약을 완료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예약 없이 주말에 방문할 경우, 현장에서 입장이 거부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정기 휴무일은 매주 월요일이다. 운영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단풍 시즌인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하며, 입장 마감은 오후 4시다. 해가 짧아지는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운영이 1시간 단축되며, 입장 마감은 오후 3시다.

아가페정원 가을 전경
아가페정원 가을 전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강시몬

사진 애호가라면 빛이 부드럽게 드리워지는 오전 9~11시, 또는 오후 3~4시 사이의 황금 시간대를 노리는 것이 좋다. 모두가 메타세쿼이아 길에 집중할 때, 정원 한편의 ‘숲속 한평 도서관’ 근처 벤치나 진홍빛 공작단풍나무 아래는 상대적으로 한적하게 강렬한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숨은 명당이다.

50년의 세월이 빚어낸 숲은 그 깊이가 다르다. 수많은 인파에 치이는 단풍놀이 대신, 고요하고 깊은 가을의 정수를 맛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달력을 확인하고 예약 전화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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