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백양사, 대한 8경 백학봉 아래 천년 고찰

3월이 시작된 무렵, 진분홍 꽃잎이 찬 공기 속에서 조용히 피어오른다.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아 있는 이른 봄, 백암산 기슭에는 다른 어느 봄꽃보다 먼저 계절이 당도했음을 알리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수관폭이 동서로 6.3m에 이르는 그 나무는 350여 년을 한자리에서 봄을 맞아왔다.
이 매화나무는 율곡매·구례 화엄사 매화·선암매와 함께 국가가 지정한 4대 천연기념물 매화 중 하나로, 제486호 고불매다. 봄 단풍은 백양사, 가을 단풍은 내장산이라는 뜻의 ‘춘백양 추내장(春白羊 秋內藏)’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이 사찰의 봄은 유독 각별하다.
내장산 국립공원 백암산 자락에 깃든 이 천년 고찰은 봄이 오면 고불매 한 그루를 중심으로 경내 전체가 조용한 설렘으로 물든다.
백제 632년에 창건된 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1239)는 백제 무왕 33년인 632년 여환 선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처음에는 백암사(白巖寺)라 불렸으며, 고려 덕종 3년인 1034년 중연 선사가 중창하며 정토사로 이름을 바꿨다.
조선 선조 7년인 1574년, 환양 선사가 흰 양 설화를 계기로 현재의 이름 백양사로 개칭했고, 오늘날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로 자리하고 있다.
사찰 입구에서 대웅전까지 이어지는 약 0.5km 구간에는 갈참나무 거목 군락이 늘어서 있으며, 고로쇠나무 3,000여 그루도 이 길을 따라 뿌리를 내리고 있다.
경내를 채운 유형문화유산과 보물들

경내에는 시대를 가로지른 문화유산이 자리한다. 대웅전은 1917년 송만암 스님이 다섯 번째로 중건한 건물로, 정면 5칸·측면 3칸의 팔작지붕 구조를 갖추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천왕문은 제44호, 극락보전도 유형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보물로는 높이 1.58m의 석종형 부도인 소요대사부도(보물 제1346호)를 비롯해 1607년 제작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2066호), 1775년 조성된 아미타여래설법도(보물 제2123호)까지 총 세 점이 있다.
두 계곡이 합류하는 연못 위에 세워진 쌍계루에서는 명승 제38호로 지정된 백학봉의 기암절벽이 수면에 비치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으며, 백양사와 백학봉 일원은 대한 8경으로 손꼽혀왔다.
천연기념물 두 곳이 공존하는 경내

백양사 경내에는 고불매 외에도 또 하나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제153호)으로, 1962년 지정 당시 약 5,000그루에 달하는 비자나무가 71만여 제곱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었다.
고려 고종 때 각진국사가 구충제 목적으로 심기 시작한 것이 유래로 전해지며, 1970년대까지는 스님들이 열매를 마을 주민에게 나눠주는 전통도 이어졌다.
고불매는 1947년 이곳에서 고불총림이 결성된 이후 ‘고불매’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우화루 옆에 자리한 높이 5.3m의 나무는 현재까지 홍매 한 그루가 매년 3월 말 진분홍빛 꽃을 피운다. 약사암에 오르면 백양사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개화 시즌에는 경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색다른 경험도 가능하다.
연중무휴 무료 개방, 주차와 방문 팁

백양사는 연중무휴로 상시 개방되며, 2023년 5월 4일 문화재관람료 면제 시행 이후 입장료는 무료다. 주차장도 장성군과 협의하여 무료로 개방되었다.
공용주차장에서 대웅전까지는 도보 10~20분 거리로, 주차 위치에 따라 차이가 있다. 매화 시즌과 단풍철에는 오전 10시 이후 혼잡이 심해지므로 이른 아침 방문이 권장된다. 종무소 문의는 061-392-7502, 템플스테이 문의는 061-392-0434로 연락하면 된다.

백양사는 천년의 세월을 품은 건축 유산과 두 곳의 천연기념물이 한 경내에 공존하는 드문 공간이다. 350년 된 매화 한 그루가 매년 봄을 증명하듯 꽃을 피우는 이 자리는, 오래된 것들이 지닌 조용한 힘을 새삼 실감하게 만든다.
봄의 시작을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싶다면, 3월 말 백학봉 아래 우화루 곁에서 고불매의 진분홍 꽃잎이 찬 공기 속에 흩날리는 순간을 직접 마주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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