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성지, 지금은 ‘단풍’ 성지입니다”… 입장료·주차비 무료인 가을 힐링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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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배론성지
단풍·역사·힐링 다 있는 가을 명소

제천 배론성지
제천 배론성지 / 사진=제천시 공식 블로그

가을이 깊어지는 10월 말, 고요한 사색과 함께 붉게 타오르는 단풍을 만끽하고 싶다면 충청북도 제천으로 향해야 한다. 화려한 관광지 대신, 200년 넘는 역사의 무게를 간직한 성지가 그 목적지다.

이곳은 입장료는 물론 넓은 주차장 이용료까지 모두 무료로 개방되어, 가을 나들이객의 부담을 덜어주는 숨은 명소이기도 하다.

울창한 숲이 붉게 물드는 장관 속에서, 한국 천주교 역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목격한 특별한 공간을 소개한다.

제천 배론성지

배론성지
배론성지 / 사진=제천시 공식 블로그

배론성지의 공식 주소는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이다. 이곳은 천주교 원주교구 소속의 성지이자, 2001년 3월 충청북도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방문객을 위한 경내 개방 시간은 공식 웹사이트 기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입장료와 주차비는 모두 무료다.

다만, 이곳은 유원지가 아닌 종교 시설이므로 반려동물 동반 입장은 엄격히 금지된다.

배 밑바닥 골짜기에 숨은 역사

배론성지 은행나무
배론성지 은행나무 / 사진=제천시 공식 블로그

‘배론(舟論)’이라는 이름은 지형에서 유래했다. 골짜기 모양이 마치 배의 밑바닥처럼 움푹 파인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깊은 지형적 특성은 조선 후기, 혹독한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더없이 안전한 은신처가 되었다.

이곳은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 당시, 황사영 알렉시오가 숨어 지내며 한국 천주교회의 절박한 상황을 비단에 적어 교황청에 보내려 했던 ‘황사영 백서’가 작성된 토굴이 있던 자리로 유명하다.

황사영 백서는 당시의 박해 실상을 알리는 동시에 신앙의 자유를 호소한 내용이 담긴 한국 천주교회의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1855년, 한국 최초의 근대식 신학교

배론성지 신학교
배론성지 신학교 / 사진=제천시 공식 블로그 진은주

배론성지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요람’이라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신학교 때문이다. 이곳에는 1855년(철종 6년), 한국 최초의 근대식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교가 세워졌다.

당시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이 신학교는, 박해의 위협 속에서도 비밀리에 성직자를 양성하는 교육의 중심지였다.

초가집 형태의 소박한 건물이었지만, 이곳에서 훗날 한국 천주교회를 이끌어갈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신학교는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단 11년 만에 문을 닫고 폐허가 되었으나, 그 터는 현재 복원되어 당시의 교육 정신을 전하고 있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안식처

배론성지 가을 풍경
배론성지 가을 풍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성지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한국인 두 번째 사제이자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최양업 신부의 묘소를 만날 수 있다.

김대건 신부에 이어 사제품을 받은 그는, 11년 6개월간 전국 5개 도의 교우촌을 밤낮없이 순행하며 사목 활동을 펼쳤다.

그가 걸은 길은 약 7천 리(약 2,800k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전국을 돌며 복음을 전하던 그는 1861년 과로와 장티푸스로 선종했으며, 그의 유해는 이곳 배론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소는 수많은 순례객이 찾아와 그의 헌신적인 삶을 기리는 장소가 되었다.

성지 방문 전 유의사항

배론성지 단풍
배론성지 단풍 / 사진=제천시 공식 블로그

배론성지는 종교적 의미가 깊은 곳인 만큼, 방문객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성지 측은 공식적으로 “성지는 유원지가 아니”라고 밝히며, “기도에 방해되지 않도록 정숙해 주시고, 음주가무나 취사 행위를 삼가 달라”고 공지하고 있다.

가을 단풍을 즐기러 온 일반 방문객이라도, 경건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고성방가를 자제하고 조용히 산책로를 거니는 에티켓이 요구된다.

대중교통으로 방문할 경우, 제천 시내(시민회관)에서 852번 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나, 배차가 하루 3회(오전 8시 50분, 오후 1시 10분, 오후 6시 50분 출발)로 매우 적어 자가용 이용을 추천한다.

자가용 이용 시, ‘배론성지 주차장’을 검색하면 넓고 쾌적한 무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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