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풍경이 무료라고요?”… 물에 반영된 단풍이 압도적인 가을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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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배론성지
붉은 단풍에 새긴 순교의 역사

제천 배론성지
제천 배론성지 / 사진=제천 공식블로그

가을이 되면 충청북도 제천의 한적한 골짜기는 세상에서 가장 붉고 선명한 색으로 타오른다. 작은 연못 위로 새빨간 단풍이 데칼코마니처럼 찍혀 나오는 풍경. 사람들은 이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다.

하지만 이 붉은빛이 그저 계절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곳은 단순한 단풍 명소가 아닌, 핏빛 박해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믿음의 역사가 겹겹이 쌓인 대지, 천주교원주교구 배론성지다.

“배 밑바닥에 숨겨진 믿음의 공동체”

제천 배론성지 단풍
제천 배론성지 단풍 / 사진=제천 공식블로그

제천 배론성지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에 자리한다. ‘배론’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마을을 둘러싼 산의 형세가 마치 배의 밑바닥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이 은밀한 지형은 조선 후기, 서슬 퍼런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피난처이자 신앙 공동체의 터전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평화로운 풍경 아래에는 한국 천주교 역사의 가장 극적인 순간들이 잠들어있다. 1801년 신유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든 황사영은 작은 토굴 속에서 박해의 참상과 교회의 재건을 호소하는 비단 편지, ‘백서(帛書)’를 집필했다.

제천 배론성지 가을
제천 배론성지 가을 / 사진=제천 공식블로그

비록 발각되어 순교의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의 절박했던 외침은 배론성지의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첫 번째 기록으로 남았다.

세월이 흘러 1855년, 이 고난의 땅에는 놀라운 희망의 씨앗이 움텄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신학교인 ‘성요셉신학교’가 세워진 것이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운영한 이 신학교는 1866년 병인박해로 폐쇄되기 전까지 11년간 사제들을 양성하며 암흑기 한국 천주교의 등불 역할을 했다.

연못가에 복원된 신학교의 초가 건물을 보고 있노라면, 짚신을 신고 라틴어를 공부했을 청년 신학생들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지는 듯하다.

“땀의 순교자, 이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다”

배론성지 단풍
배론성지 단풍 / 사진=제천 공식블로그

배론성지의 역사는 한국의 두 번째 사제이자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1861)와 함께 절정을 이룬다. 그는 12년간 전국을 누비며 1만 9천 리의 길을 걸어 교우들을 돌보다 과로로 선종했다.

그의 묘소가 바로 이곳, 배론성지에 있다. 웅장한 대성당 뒤편에 자리한 그의 묘역과 조각 공원을 천천히 걷는 것은, 한 사람의 위대한 헌신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처럼 제천 배론성지는 저항과 희망, 그리고 헌신이라는 세 겹의 역사를 품고 있다. 연못에 비친 붉은 단풍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그것은 이 땅을 지켰던 순교자들의 피와, 꺼지지 않았던 믿음의 열정과,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평화의 빛깔이 모두 섞인 색이다.

제천 배론성지 가을 절경
제천 배론성지 가을 절경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충청북도 기념물 제118호’이자 ‘제천 10경’으로 지정된 이유 역시, 이처럼 자연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무게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곳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운영 시간(오전 9시~오후 5시)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입장료와 주차료는 무료다. 완벽한 반영 사진을 원한다면 바람이 없는 맑은 날 오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단순한 ‘인생샷’을 넘어, 붉은 단풍의 반영 위로 200년 전 신앙 선조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면, 배론성지의 가을은 당신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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