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염전은 없다”… 수십 년 만에 되살아난 해안 산책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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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구엄리 돌염전
시간을 품은 제주의 소금밭

제주 구엄리 돌염전
제주 구엄리 돌염전 / 사진=비짓제주

세련된 카페와 인파로 북적이는 제주 애월의 해안도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풍경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낯선 공간이 발길을 붙잡는다. 파도에 씻겨 반질반질해진 검은 현무암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거북이 등껍질처럼 기하학적인 선들이 새겨져 있다.

이곳이 바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 1229-5 일대에 자리한 구엄리 돌염전이다. 제주말로 ‘너럭바위’를 뜻하는 ‘빌레’를 붙여 ‘소금빌레’라 불렸던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제주의 바람과 햇살,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땀으로 소금을 일궈냈던 지혜의 현장이다.

현무암으로 소금을 만든 비결

구엄리 돌염전
제주 구엄리 돌염전 / 사진=비짓제주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이 검고 평평한 돌밭에서 어떻게 소금을 만들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곳에는 자연의 원리를 완벽하게 꿰뚫어 본 선조들의 과학적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금 농사는 크게 두 단계로 이루어졌다. 첫째, 파도가 닿지 않는 너럭바위 가장자리에 둑을 쌓아 ‘고랑’을 만든다. 밀물 때 들어온 바닷물을 이 고랑에 가두어 두면, 제주의 강렬한 햇살과 쉴 새 없이 부는 해풍이 수분을 증발시킨다. 며칠간 자연 건조를 통해 염도가 높아진 물, 즉 ‘간수’가 만들어진다.

둘째, 이렇게 농축된 간수를 더 안쪽의 평평하고 잘게 쪼개진 ‘소금밭’으로 옮겨 담는다. 그러면 얕게 고인 간수 위로 햇살이 내려쬐며 마침내 하얀 소금 결정이 맺히기 시작한다. 이 소금을 조심스럽게 긁어모으는 것으로 고된 소금 농사는 마무리된다. 구엄리 돌염전은 자연이 선물한 거대한 검은 증발 접시였던 셈이다.

한 해 17톤, 마을을 먹여 살리던 ‘하얀 보석’의 역사

제주 구엄리 돌염전 항공
제주 구엄리 돌염전 / 사진=비짓제주

이 지혜로운 방식으로 구엄리 돌염전은 1950년대까지 마을 전체의 생계를 책임지는 핵심적인 산업기지였다.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은 쓴맛이 적고 단맛이 돌아 품질이 좋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기록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한 해 생산량이 무려 17톤에 달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주민들에게 이곳은 “마을 어장만큼이나 소중하게 농사를 짓던 소금 농사의 터전” 그 자체였다.

하지만 해방 이후, 공장에서 값싸고 균일한 품질의 소금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구엄리 돌염전의 운명은 급격히 기울었다. 수고롭고 고된 전통 방식은 더 이상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고, 한때 마을의 자랑이었던 소금빌레는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졌다.

제주시 숨은 비경으로 부활하다

제주 구엄리 돌염전 전경
제주 구엄리 돌염전 / 사진=제주 공식블로그

잊혔던 돌염전은 21세기에 들어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으며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제주시는 마을 공동체의 역사와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여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자 특별한 관광 자원으로 조성했다.

그 결과, 구엄리 돌염전‘제주시 숨은 비경 31’ 중 하나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는 화려한 볼거리 위주의 관광에서 벗어나, 제주의 진짜 속살과 이야기를 찾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라는 공식적인 인증과 같다. 입장료나 주차료 없이 24시간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제주의 옛 지혜와 마주할 수 있다. (관광 문의: 제주 관광정보센터 064-740-6000)

제주 돌염전
제주 구엄리 돌염전 / 사진=제주 공식블로그 김현주

이곳을 제대로 즐기려면, 돌염전을 제주의 해안누리길 ‘엄장해안길’의 시작점으로 삼아보길 추천한다. 돌염전에서 시작해 고내리 포구까지 이어지는 이 길을 따라 걸으며, 한쪽으로는 제주의 푸른 바다를, 다른 한쪽으로는 제주의 오랜 이야기를 품고 걷는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검은 현무암 위에 하얗게 피어났던 소금꽃의 기억은, 이제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목마른旅人들의 마음을 채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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