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오르고 이런 풍경이?”… 초보자도 편하게 가는 초록 언덕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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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백약이오름
정상 대신 굼부리에서 만나는 파노라마

백약이오름
백약이오름 / 사진=비짓제주

제주 동부의 오름 벨트를 대표하는 명소, 수많은 약초가 자란다 하여 ‘백약(百藥)’이라는 이름을 얻은 신비로운 오름. 부드러운 능선과 정상의 드넓은 분화구가 그려내는 목가적인 풍경으로 사계절 내내 사랑받는 백약이오름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을 방문할 계획이라면, 잠시 멈춰 이 글을 먼저 읽어야만 한다. 우리가 알던 정상으로 가는 길목 일부가 자연에게 잠시 시간을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제주 백약이오름

제주 백약이오름
백약이오름 / 사진=비짓제주

백약이오름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산1에 위치하며, 그 명성만큼이나 많은 탐방객의 발길이 이어졌던 곳이다. 하지만 잦은 발길은 오름의 토양을 단단하게 만들고 고유한 식생을 위협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에 제주특별자치도는 오름의 생태계를 회복시키고 보전하기 위한 결단을 내렸다. 제주특별자치도 공고 제2024-2339호에 따라, 2024년 8월 1일부터 별도의 해제 공고가 있을 때까지 백약이오름 정상부의 가장 높은 봉우리 지역 일부가 자연휴식년제에 들어갔다.

백약이오름 소
백약이오름 소 / 사진=비짓제주

이는 오름 전체가 폐쇄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정상 최고점을 제외한 기존의 모든 탐방로와, 백약이오름의 백미로 꼽히는 원형 분화구(굼부리) 둘레길은 여전히 탐방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는 오름의 가장 연약한 심장부에게 잠시 휴식을 주는 대신, 그 주변을 거닐며 여전히 아름다운 풍광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이는 통제라기보다 자연과 탐방객이 공존하기 위한 현명한 약속에 가깝다. 이러한 제주의 자연휴식년제는 과잉 관광 시대에 제주의 허파와도 같은 오름을 지키려는 중요한 환경 보전 정책의 일환이다.

백 가지 약초의 언덕

백약이오름 정상
백약이오름 / 사진=비짓제주

백약이오름이 왜 이토록 소중한 보호의 대상이 되었는지는 그 이름에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해발 356.9m의 이 오름은 예로부터 층층이꽃, 향유, 쑥, 쇠무릎 등 이름만 들어도 건강해지는 듯한 수많은 약초가 자생하는 생명의 보고였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오르다 보면 발밑에서 피어나는 각양각색의 야생화와 풀들이 저마다의 생명력을 뽐낸다.

탐방은 입구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차장은 무료인 공영주차장과 입구 바로 앞 유료 사설주차장 두 곳이 있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탐방로 입구까지 약 300m, 걸어서 5분 남짓한 거리다.

탐방로 자체는 경사가 완만하고 대부분 잘 정비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30분 내외면 정상부 분화구에 닿을 수 있다. 특히 가을철인 10월경에 방문하면, 등산로 양옆으로 은빛 물결을 이루는 억새 군락이 장관을 이룬다.

정상을 내어주고 얻은 더 넓은 풍경

백약이오름 전경
백약이오름 / 사진=비짓제주

자연휴식년제로 인해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오를 수는 없지만, 탐방객들은 여전히 드넓은 원형 경기장 형태의 분화구 둘레길을 온전히 걸을 수 있다. 오히려 이 둘레길을 따라 걷는 것이 백약이오름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360도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풍경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동쪽으로는 좌보미오름이, 동북쪽으로는 동거미오름과 문석이오름, 그리고 그 뒤로 위용을 뽐내는 높은오름이 시야에 들어온다. 북쪽에는 움푹 팬 분화구가 인상적인 아부오름이 자리하고, 서쪽과 남쪽으로도 민오름, 개오름, 영주산 등 제주의 수많은 오름이 겹겹이 이어진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정상 한 봉우리의 휴식이 우리에게 더 너른 시야와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셈이다. 오름을 오르는 것은 정복이 아니라 교감이라는 사실을 백약이오름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자연에게 자리를 내어준 이곳에서, 우리는 더 깊고 성숙한 여행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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