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로 지정 된 이유가 이거였어?”… 산보다 깊은 분화구 품은 가을 억새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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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산굼부리
국내 유일 마르형 분화구

산굼부리 가을
산굼부리 가을 / 사진=비짓제주

가을 제주를 이야기할 때, 은빛으로 물결치는 억새의 바다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산굼부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열광하는 그 눈부신 억새밭이 사실은 거대한 자연의 경이를 가리기 위한 아름다운 커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비자림로 768에 위치한 산굼부리는 단순한 억새 명소가 아니다. 이곳은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263호이자, 위로 솟구친 것이 아니라 땅속으로 폭발해 들어간 국내 유일의 ‘마르(Maar)형 분화구’라는 지구과학 교과서 그 자체다.

‘마르(Maar)’란 무엇인가?

산굼부리
산굼부리 / 사진=제주시청 공식블로그

제주에는 360여 개의 오름이 있다. 대부분은 화산재가 쌓여 봉긋하게 솟아오른 ‘분석구(Cinder Cone)’ 형태다. 우리가 흔히 오르는 새별오름이나 용눈이오름이 바로 그렇다. 하지만 산굼부리는 그들과 태생부터 다르다.

산굼부리는 뜨거운 마그마가 땅속을 흐르다 차가운 지하수층을 만나면서 발생한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지표면을 통째로 날려버리며 형성된, 말 그대로 ‘폭발형’ 화산체다.

산굼부리 억새
산굼부리 억새 / 사진=비짓제주

이것이 바로 ‘마르(Maar)형 분화구’다. 그래서 다른 오름처럼 가파른 정상을 오르는 수고가 없다. 대신 나지막한 언덕에 오르면, 갑자기 발아래로 거대한 구멍이 아득하게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산의 높이는 약 100m에 불과하지만, 분화구의 깊이는 무려 132m, 둘레는 2km가 넘는다. 산체보다 분화구가 훨씬 더 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독특한 지형은 바로 이 격렬한 탄생의 역사를 증명하는 흔적이다.

분화구 안에 숨겨진 또 하나의 세상

산굼부리 돌담길
산굼부리 돌담길 / 사진=비짓제주

거대한 분화구 안을 들여다보면, 그 규모에 다시 한번 압도당한다. 외부와는 전혀 다른 생태계가 그 안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햇빛의 양과 온도, 습도에 따라 분화구의 북쪽 사면에는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같은 난대성 수목이, 남쪽 사면에는 서어나무, 단풍나무 등 온대성 낙엽수림이 자란다. 마치 거대한 그릇 안에 한라산의 식생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이곳이 ‘분화구 식물원’이라 불리는 이유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분화구 내부는 한라산 동부의 원시 식생이 고스란히 보존된 타임캡슐과도 같다. 천연기념물 제263호 지정의 핵심 이유 역시, 이 독특한 마르형 분화구와 그 안에 보존된 높은 학술적 가치의 식생 때문이다.

산굼부리 방문 전 알아야 할 모든 것

제주 산굼부리
산굼부리 / 사진=비짓제주

이 특별한 경험을 위해 몇 가지 실용적인 정보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운영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하절기인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40분까지이며, 입장 마감은 오후 6시다. 동절기인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후 5시 40분까지 운영하고, 입장 마감은 오후 5시다.

특히 해가 짧은 겨울철에는 방문을 서둘러야 한다. 입장료는 유료로 운영되며 성인은 7,000원, 청소년 및 어린이는 6,000원, 경로는 (65세 이상) 5,000원이고, 주차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문의: 064-783-9900) 탐방은 입구에서 분화구 정상까지 완만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10~15분이면 쉽게 오를 수 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억새 사진 너머의 진짜 산굼부리를 만나보는 것이 좋다. 수만 년 전, 이 땅을 뒤흔들었던 거대한 폭발의 현장 위에서 가을바람을 맞는 경험은 제주 여행을 훨씬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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