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분 오르니 이런 풍경이?”… 등산 초보도 쉽게 오르는 무료 은빛 억새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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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비오름
가을에 꼭 가봐야 할 억새 물결 덮인 오름

따라비오름 억새
따라비오름 억새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주의 가을은 투명한 하늘과 청량한 바람, 그리고 그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은빛 물결을 만들어내는 억새의 계절이다. 수많은 오름이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지만, 유독 ‘오름의 여왕’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곳이 있다.

그저 아름다운 풍경 때문일 것이라는 짐작은 금물이다. 이곳에는 여왕의 왕관처럼 여러 개의 봉우리와 분화구가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며, 다른 곳에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가을의 서사를 완성하고 있었다.

바람의 손길로 빚어진 지질학적 예술품이 억새와 만나 어떤 감동을 자아내는지,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여왕의 품으로 향했다.

따라비오름

“10월~11월에만 즐길 수 있는 억새 명소”

따라비오름 풍경
따라비오름 풍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지호

따라비오름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62에 자리한, 제주의 수많은 기생화산 중에서도 독보적인 형태미를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의 산체에 세 개의 분화구(굼부리)가 나란히 혹은 겹쳐져 있다는 점이다. 제주에서도 드문 이 ‘삼형제 굼부리’ 구조는 각기 다른 시점과 방향으로 분출한 화산 활동의 흔적으로, 덕분에 오름 전체는 단조로운 원뿔 형태를 벗어나 유려하고 입체적인 곡선의 파노라마를 펼쳐낸다.

크고 작은 6개의 봉우리가 이 굼부리들을 부드럽게 감싸며 능선으로 연결되는데, 바로 이 구조적 특별함이 따라비오름을 여왕의 반열에 올려놓은 첫 번째 이유다.

따라비오름
따라비오름 / 사진=비짓제주

이 독특한 지형 위로 가을이 내려앉으면 비로소 여왕의 대관식이 시작된다. 10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절정을 이루는 제주 억새 군락이 오름 전체를 은빛으로 뒤덮는 것이다.

억새는 단순히 능선을 따라 피어나는 것을 넘어, 움푹 파인 굼부리 안쪽까지 가득 차올라 거대한 은빛 바다를 연출한다. 한 가을 시즌 전문 사진작가는 “정상에 서면 굼부리 안쪽까지 은빛 억새가 파도치는데, 마치 오름 전체가 거대한 생명체처럼 숨 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억새의 물결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은 다른 오름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장관이죠.”라며 따라비오름의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극찬했다.

햇살의 각도에 따라 은빛으로, 때로는 금빛으로 채색을 바꾸는 억새의 향연은 여러 개의 굼부리가 만들어낸 입체적인 지형 위에서 한층 극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40분이면 충분한 정상

따라비오름 트레킹
따라비오름 트레킹 / 사진=비짓제주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칭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입구 주차장에서 정상까지는 성인 걸음으로 약 30분에서 40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다.

탐방로는 잘 정비된 나무 계단과 부드러운 흙길이 번갈아 나타나 초심자나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탐방객도 큰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난이도는 ‘하’와 ‘중’ 사이로 분류되지만, 오름이 선사하는 풍경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따라비오름을 제대로 즐기려면 최소 1시간의 여유를 갖는 것이 좋다. 정상에 오른 뒤, 3개의 굼부리를 따라 조성된 둘레길을 천천히 거닐어보길 추천한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입구에 마련된 넓은 무료 주차장 외에는 화장실을 비롯한 편의시설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방문 전 반드시 인근에서 화장실을 미리 다녀오는 준비가 필요하다. 입장료주차료는 모두 무료로, 이토록 고귀한 풍경을 아무런 대가 없이 누릴 수 있다는 점은 여행객에게 큰 선물이다.

갑마장길의 일부,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걷다

따라비오름 모습
따라비오름 모습 / 사진=비짓제주

따라비오름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트레킹 코스지만, 사실 더 큰 그림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나라에 진상할 최고 등급의 말을 키우던 국영 목장 ‘갑마장(甲馬場)’의 흔적을 따라 조성된 가시리 갑마장길(총 20km)에 속해있다.

그중에서도 핵심 코스인 ‘쫄븐갑마장길'(10.3km)은 따라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을 아우르며 제주의 목축 문화와 오름의 생태를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오름 탐방을 넘어, 억새가 만발한 평원을 가로지르며 옛 목동의 길을 따라 걷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

따라비오름 억새 물결
따라비오름 억새 물결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주의 대표적인 억새 명소인 새별오름과 비교해 보면 따라비오름의 매력은 더욱 선명해진다.

새별오름이 서쪽 능선을 따라 가파르게 치솟는 직선적인 웅장함과 단일 화구의 시원스러운 조망을 자랑한다면, 따라비오름은 여러 개의 굼부리가 빚어내는 부드러운 곡선미와 능선을 넘나들며 시시각각 변하는 아기자기한 풍경이 특징이다.

따라비오름은 단순한 억새 군락지가 아니다. 바람과 시간이 빚어낸 독특한 지형 위에서 억새와 햇빛, 그리고 제주의 바람이 합주하는 한 편의 교향곡을 감상할 수 있는 자연의 무대다.

짧은 산행으로 최고의 만족감을 얻고 싶다면, 올가을 ‘오름의 여왕’이 선사하는 품격 있는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그곳에서 당신은 제주의 가을이 얼마나 깊고 다채로운지를 온몸으로 실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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