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가본 사람 있어요?”… 하루 4번만 열린다는 섬 속에 숨은 섬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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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비양도와 구좌마을, 곶자왈까지 숨겨진 제주 이야기

송악산에서 바라본 제주
송악산에서 바라본 제주 / 사진=ⓒ한국관광공사 Ivana Jirovska

제주 여행은 렌터카부터 흑돼지, 성산일출봉까지 익숙한 코스들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의 기대와 달리 아쉬움이 남는다. 누구나 한 번쯤 밟아본 그 길 위에서, 진짜 제주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섬엔 아직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바닷바람을 따라 흐르는 해녀의 인사, 금잔디 마당이 펼쳐진 마을, 숲속에 숨어 있는 봄의 소리까지. 조금 다르게 걸어보면, 제주는 전혀 다른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다.

비양도

비양도
비양도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지호

한림읍 협재 앞바다에 조용히 떠 있는 0.52㎢의 작은 섬, 비양도. 우도보다 열 배는 작은 이곳은 여전히 사람보다 자연이 많은 공간이다. 배로 20분, 때로는 수영으로도 닿을 수 있다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의 발길은 드물다.

하루에 네 번뿐인 여객선, 마지막 배를 놓치면 하루를 묵어야 하지만 민박 외엔 숙소도 없다. 그 불편함마저 이 섬의 매력이다.

비양도 배
비양도 배 / 사진=ⓒ한국관광공사 이범수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지만, 그 짧은 여정엔 오래된 이야기가 가득하다. 염소가 풀을 먹다 만들어낸 ‘코끼리 바위’, 지금은 휴교 중인 단 하나의 초등학교, 여유롭게 물질을 마치고 인사 건네는 해녀들까지.

한 끼 따뜻한 밥을 먹고 섬을 도는 길,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자연과 사람이 공존했던 제주의 과거를 만난다.

구좌 마을

구좌읍 마을
구좌 마을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주시 동부 해안 구좌읍. 당근으로 유명한 이 마을에는 누구도 몰랐던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해녀들이 난파된 외국 상선에서 위스키를 건져 밤마다 파티를 열던 시절, 협동으로 바다를 나누고 물질하던 전통은 지금도 이어진다.

이 귀한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는 바로 ‘부석희 삼춘’.

구좌읍 주택
구좌 마을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삼춘이 이끄는 마을여행은 트럭을 타고 돌담길을 달리며 당근밭을 지나고, 기도하는 용왕당에서 멈추기도 한다. 매번 다른 코스, 다른 이야기. 집집마다 깔린 금잔디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날 한 할멍이 심기 시작한 잔디가 이웃 마당으로 퍼지며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정원대회도 없이 자연스레 피어난 이 경쟁심이 만든 풍경은, 구좌의 살아 있는 시간의 흔적이다.

곶자왈

곶자왈
곶자왈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지호

제주의 자연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곶자왈에서는 귀를 열어야 진짜 봄을 만날 수 있다. 우거진 숲이 빽빽하게 하늘을 가리는 이곳은 한낮에도 어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더사운드벙커’에서 운영하는 ‘사운드워킹’ 프로그램은 이러한 곶자왈의 특성을 살려, 시끄러운 관광 대신 조용한 감각의 여행을 선사한다.

약 40분 동안 이어지는 이 숲 속 산책에서는 고성능 녹음기와 헤드셋을 착용한 채로 휘파람새, 산개구리, 딱따구리, 풀벌레 소리까지 섬세하게 들을 수 있다.

곶자왈 고사리
곶자왈 고사리관 / 사진=ⓒ한국관광공사 이범수

귀로 듣는 숲, 매번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는 이 공간은 마치 자연이 들려주는 ASMR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곶자왈 고유의 생태계까지 더해지면,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된다.

제주 고유의 식물과 멸종위기 생물들이 공존하는 이 생태계는, 바다뿐 아니라 숲도 보물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비양도 전경
비양도 전경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지호

제주는 더 이상 ‘찍고 떠나는’ 여행지에 머물지 않는다. 비양도의 한적한 풍경, 구좌마을 어귀의 따뜻한 이야기, 곶자왈 숲 속의 숨은 생명 소리까지. 이곳은 느리게 걷고, 오래 머물며, 사람의 말을 듣는 여행지다.

지금 제주를 여행하고 있다면, 혹은 계획 중이라면 이번만큼은 조금 다른 길을 걸어보자. 제주가 아직 들려주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 하나가, 그 길 끝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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