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비양도와 구좌마을, 곶자왈까지 숨겨진 제주 이야기

제주 여행은 렌터카부터 흑돼지, 성산일출봉까지 익숙한 코스들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의 기대와 달리 아쉬움이 남는다. 누구나 한 번쯤 밟아본 그 길 위에서, 진짜 제주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섬엔 아직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바닷바람을 따라 흐르는 해녀의 인사, 금잔디 마당이 펼쳐진 마을, 숲속에 숨어 있는 봄의 소리까지. 조금 다르게 걸어보면, 제주는 전혀 다른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다.
비양도

한림읍 협재 앞바다에 조용히 떠 있는 0.52㎢의 작은 섬, 비양도. 우도보다 열 배는 작은 이곳은 여전히 사람보다 자연이 많은 공간이다. 배로 20분, 때로는 수영으로도 닿을 수 있다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의 발길은 드물다.
하루에 네 번뿐인 여객선, 마지막 배를 놓치면 하루를 묵어야 하지만 민박 외엔 숙소도 없다. 그 불편함마저 이 섬의 매력이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지만, 그 짧은 여정엔 오래된 이야기가 가득하다. 염소가 풀을 먹다 만들어낸 ‘코끼리 바위’, 지금은 휴교 중인 단 하나의 초등학교, 여유롭게 물질을 마치고 인사 건네는 해녀들까지.
한 끼 따뜻한 밥을 먹고 섬을 도는 길,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자연과 사람이 공존했던 제주의 과거를 만난다.
구좌 마을

제주시 동부 해안 구좌읍. 당근으로 유명한 이 마을에는 누구도 몰랐던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해녀들이 난파된 외국 상선에서 위스키를 건져 밤마다 파티를 열던 시절, 협동으로 바다를 나누고 물질하던 전통은 지금도 이어진다.
이 귀한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는 바로 ‘부석희 삼춘’.

삼춘이 이끄는 마을여행은 트럭을 타고 돌담길을 달리며 당근밭을 지나고, 기도하는 용왕당에서 멈추기도 한다. 매번 다른 코스, 다른 이야기. 집집마다 깔린 금잔디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날 한 할멍이 심기 시작한 잔디가 이웃 마당으로 퍼지며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정원대회도 없이 자연스레 피어난 이 경쟁심이 만든 풍경은, 구좌의 살아 있는 시간의 흔적이다.
곶자왈

제주의 자연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곶자왈에서는 귀를 열어야 진짜 봄을 만날 수 있다. 우거진 숲이 빽빽하게 하늘을 가리는 이곳은 한낮에도 어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더사운드벙커’에서 운영하는 ‘사운드워킹’ 프로그램은 이러한 곶자왈의 특성을 살려, 시끄러운 관광 대신 조용한 감각의 여행을 선사한다.
약 40분 동안 이어지는 이 숲 속 산책에서는 고성능 녹음기와 헤드셋을 착용한 채로 휘파람새, 산개구리, 딱따구리, 풀벌레 소리까지 섬세하게 들을 수 있다.

귀로 듣는 숲, 매번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는 이 공간은 마치 자연이 들려주는 ASMR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곶자왈 고유의 생태계까지 더해지면,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된다.
제주 고유의 식물과 멸종위기 생물들이 공존하는 이 생태계는, 바다뿐 아니라 숲도 보물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제주는 더 이상 ‘찍고 떠나는’ 여행지에 머물지 않는다. 비양도의 한적한 풍경, 구좌마을 어귀의 따뜻한 이야기, 곶자왈 숲 속의 숨은 생명 소리까지. 이곳은 느리게 걷고, 오래 머물며, 사람의 말을 듣는 여행지다.
지금 제주를 여행하고 있다면, 혹은 계획 중이라면 이번만큼은 조금 다른 길을 걸어보자. 제주가 아직 들려주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 하나가, 그 길 끝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ab@9
제주도 음식점 횟집 가지마라 바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