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내코 원앙폭포, 무료로 즐기는 제주의 에메랄드빛 비경

7월의 제주는 온통 뜨겁다. 이글거리는 태양, 달궈진 아스팔트, 인파의 열기로 가득한 해변까지. 이 모든 소란과 열기를 피해 숨을 고를 곳이 간절해질 때쯤, 섬의 심장 한라산은 전혀 다른 계절을 선물한다. 산의 깊은 속살에서 태어난 얼음장 같은 냉천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차가운 생명수가 흘러내려 만든 가장 신비로운 비경 중 하나가 바로 서귀포 돈내코계곡이다. 과거 멧돼지(豚)들이 물을 마시던 하천(川) 입구(口)라는 이름처럼, 태고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이곳에 전설을 품은 폭포가 숨어있다.
이 물줄기 맞으면 1년이 편안하다?

신비로운 폭포를 만나기 위한 여정은 돈내코유원지(제주 서귀포시 상효동 1459)에서 시작된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울창한 난대림이 만든 숲 터널로 들어서는 순간, 세상의 소음은 멀어지고 공기의 온도가 서늘하게 바뀐다.
청아한 물소리를 따라 15분 남짓 걸으면, 마침내 시야가 트이며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소(沼)와 마주하게 된다. 바로 돈내코 원앙폭포다.
높이 5m의 아담한 폭포지만, 두 줄기의 흰 물살이 투명한 옥빛 물웅덩이로 떨어지는 모습은 넋을 잃고 보게 만든다. 사이좋은 원앙 한 쌍이 살았다는 전설처럼, 그 모습이 정답고 아름답다.
백중날, 폭포가 약수가 되는 시간

이곳의 물은 한라산의 만년설이 녹아 땅속으로 스며든 까닭에 한여름에도 뼛속까지 시릴 만큼 차갑기로 유명하다. 잠시 발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열기가 단번에 가실 정도다. 바로 이 차가움 때문에, 원앙폭포는 오랜 시간 제주 도민들에게 단순한 피서지를 넘어 신성한 치유의 공간으로 여겨졌다.
매년 음력 7월 15일, ‘백중날’에 이 폭포수를 맞으면 모든 신경통이 사라진다는 믿음이 지금껏 전해져 내려온다. 실제로 이 날이 다가오면 제주 토박이들은 물론, 소문을 들은 여행객들까지 약수를 맞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든다.
2025년의 백중날은 양력 9월 6일로, 이날의 돈내코는 제주의 오랜 민속 신앙이 살아 숨 쉬는 생생한 현장이 될 것이다.
물놀이 안전수칙과 사계절의 매력

이 모든 비경을 누리는 데 입장료나 주차비는 일절 없다. 여름이면 깨끗하고 차가운 물을 찾아온 이들로 붐비는데, 물놀이 가능 시기는 매년 조금씩 바뀌지만 주로 7~8월에 해당한다. 이 기간 물놀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하며 안전요원이 상시 배치된다.
다만, 안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원앙폭포 바로 아래 웅덩이는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3m가 넘어 매우 위험하므로 다이빙은 절대 금지된다.

어린이를 동반했다면 폭포보다는 수심이 얕은 옆 계곡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또한 비가 내릴 때는 안전을 위해 입수 자체가 전면 금지되니 반드시 따라야 한다.
하지만 돈내코의 진정한 가치는 여름 한철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일대는 천연기념물 제432호 ‘제주 상효동 한란 자생지’로, 사계절 내내 독특한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는 보고(寶庫)다. 물놀이를 하지 않더라도 잘 정비된 나무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산림욕은 그 자체로 훌륭한 치유의 경험을 선사한다.

전설이 깃든 폭포와 백중날의 풍습,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울창한 숲까지. 돈내코 원앙폭포는 단순한 여름 피서지를 넘어 제주 자연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한여름에는 뼛속까지 시원한 휴식을, 다른 계절에는 고즈넉한 산책의 즐거움을 무료로 선사하는 이곳은 제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석 같은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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