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381년 창건된 호국불교의 성지

12월의 정족산은 첫눈을 기다리며 고요한 적막 속에 잠겨 있다. 차가운 공기가 산자락을 감싸고,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겨울 햇살이 스며드는 그 한가운데, 천 년을 넘게 자리를 지켜온 공간이 있다.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이 사찰은 서기 381년에 창건된 현존 최고(最古) 사찰이며, 세 곳의 보물급 문화재와 조선왕조실록을 지켰던 역사까지 품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을 물리친 호국불교의 근본도량이자, 겨울 설경이 가장 아름다운 이곳의 매력을 살펴봤다.
전등사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인 서기 381년, 진나라에서 건너온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진종사(眞宗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해진 지 단 6년 만에 강화도에 세워진 이 고찰은,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이후 고려 시대인 1266년 대규모 중창을 거쳤고, 1282년 충렬왕의 왕비 정신부주가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현재의 이름인 ‘전등사(傳燈寺)’로 개명됐다. 전등은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으로, 호국불교의 본산으로서 사명을 명확히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1614년 화재로 전소된 뒤 1621년 2월 재건된 전등사는, 조선 중기 목조 건축의 우수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1660년에는 정족산 사고가 설치되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국가 기록유산의 보루 역할을 맡기도 했다.
보물 3점과 설경의 조화

전등사 경내에는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된 세 건축물이 자리한다. 대웅전(보물 제178호)은 1622년에 준공된 정면·측면 각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다포양식의 정교한 공포가 기둥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배치되어 조선 중기 목조 건축의 세련미를 보여준다.
지붕을 떠받치는 네 마리 목각상은 불교 설화와 건축 미학이 결합된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특히 눈이 내린 날이면 기와지붕 위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낸다.
약사전(보물 제179호)은 1621년경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약사여래좌상을 모신 곳이다. 병을 앓는 신자들이 불공을 드리던 이곳은 조선시대 중기 불교 건축의 좋은 사례로, 겨울 햇살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면 내부의 단청이 더욱 선명하게 빛나는 편이다.

범종(보물 제393호)은 북송 시대인 1097년 중국 허난성 백암산 숭명사에서 제작된 것으로, 높이 1.64m, 입지름 1m의 장중한 형태와 맑은 소리가 특징이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위기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보존된 문화유산이며,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울리는 범종 소리는 천 년을 넘는 역사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한다.
겨울철 전등사는 울창한 숲이 사찰 전역을 감싸고, 눈 내린 한옥과 고요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방문객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선사한다.
경내 죽림다원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를 누리며 창밖으로 펼쳐지는 설경을 감상하는 것도 겨울 전등사만의 매력이다.

전등사(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는 2023년 5월 4일부터 입장료를 완전히 폐지해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 09:00~17:30로 운영되며, 연중무휴로 방문할 수 있다.
주차는 남문 주차장이 가장 편리하며, 대형 차량 8,000원, 소형 차량 2,000원의 주차료가 부과된다.
겨울철 방문 시에는 눈길을 대비해 미끄럼 방지 신발을 착용하는 편이 안전하고, 산사의 기온이 평지보다 3~4도 낮아 따뜻한 옷차림이 필수다. 전등사는 평일과 휴일을 막론하고 연간 약 100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며, 역사와 자연이 만나는 교차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등사는 1600년 이상의 세월을 견뎌낸 현존 최고의 사찰로, 호국불교의 정신과 민족의 역사를 온몸으로 증언하는 공간이다. 보물급 문화재와 깊은 산세가 만든 설경이 여행객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하는 셈이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당일형·체험형·휴식형)도 운영 중이며, 겨울 산사에서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걷는 산책은 일상의 번잡함을 잊게 만든다.
시간이 멈춘 듯한 사찰의 고요함 속에서 잠시 마음을 비우고 싶다면, 하얀 눈이 사찰을 감싸는 12월의 지금 이곳으로 향해 천 년 역사와 겨울 자연이 함께 만든 특별한 여정을 걸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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