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향교
670년 향교에서 만나는 은행나무

수많은 인파와 먹거리의 활기로 가득 찬 전주한옥마을. 그 시끌벅적함에서 불과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세상의 소리가 잠잠해지는 공간이 나타난다.
돌담 너머로 거대한 금빛 차양이 드리워지고, 발밑에는 바스락거리는 은행잎 카펫이 깔린다. 이곳이 바로 400년 넘는 세월을 견뎌낸 은행나무가 지키고 선 전주향교다.
단순히 ‘사진 잘 나오는 곳’으로 알았다면 오산이다. 이 고요한 공간은 한때 호남 전역의 교육을 책임졌던 국립 교육기관의 심장이었다.
가을이 절정으로 향하는 지금, 우리는 입장료 없이 이 모든 풍경과 역사를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맞이했다.
전주향교

전주향교의 공식 주소는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139 (교동)이다. 이곳의 가을은 대성전 앞뜰에 버티고 선 두 그루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책임진다.
수령이 400년을 훌쩍 넘긴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목들은 11월 초중순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황금빛 잎을 쏟아낸다.
이 풍경이 워낙 비현실적이고 고풍스러워, 수많은 K-드라마의 배경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보검과 김유정이 거닐었고, 〈성균관 스캔들〉속 유생들의 이야기가 이곳에서 펼쳐졌다.
최근의 관광객들은 이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듯, 노란 은행잎 비를 맞으며 ‘인생 사진’을 남기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다.
400년 은행나무보다 깊은 670년의 역사

하지만 전주향교의 진정한 가치는 이 화려한 풍경 너머에 숨겨진 깊은 역사에 있다. 이곳은 1992년 12월 23일 사적으로 지정된 국가 공인 문화유산이다.
그 시작은 고려 공민왕 3년(13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기전(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 근처에 처음 세워졌으나, 향교에서 글 읽는 소리가 조용한 제례 공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조선 세종 대에 전주천 서쪽 화산동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이 역시 거리가 너무 멀어 학생들이 통학에 불편을 겪자, 마침내 조선 선조 36년(1603년) 관찰사 장만이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겨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즉,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은 최소 420년 이상, 그 역사적 맥락은 670년이 넘는 유서 깊은 교육의 터전인 셈이다. 향교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유학을 가르치고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던 지방의 국립 중·고등학교 격이었다.
호남 제일의 ‘수도향교’

전주향교의 품격은 핵심 건축물인 대성전에서 드러난다.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제사 공간인 대성전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7호로 별도 지정되어 있다.
효종 4년(1653년)에 고쳐 지어진 기록이 있으며, 맞배지붕의 간결하면서도 장엄한 건축미가 돋보인다.
학생들이 실제로 모여 공부하던 강당인 명륜당 역시 위풍당당하다. 넓은 마루와 정갈한 구조는 수백 년간 이어져 온 학문의 열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 외에도 동무와 서무, 계성사, 학생들이 머물던 동재와 서재 등이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조선시대 교육기관의 전형적인 ‘전학후묘’ 배치를 잘 보여준다.
운영 시간과 주차 팁

이 모든 역사와 풍경을 누리는 데 드는 비용은 입장료 무료다. 운영시간은 하절기(3월~10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가을이 깊어지는 동절기(11월~2월)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한 시간 단축 운영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휴무일이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관한다. 만약 월요일이 공휴일이라면 문을 열고, 그다음 날인 화요일에 대체 휴관하니 일정 계획 시 유의해야 한다.
주차는 도보 5~10분 거리에 있는 국립무형유산원 주차장을 추천한다. 이곳은 무료로 개방되어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또는 한벽문화관 주차장(유료)을 이용한 뒤, 한벽당을 거쳐 향교로 산책하며 이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요한 아침 시간대 방문을 추천한다. 인파가 몰리기 전, 아침 햇살에 빛나는 은행나무 아래서 고즈넉한 돌담길을 거닐다 보면, 활기찬 전주한옥마을과는 또 다른 전주의 깊은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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