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단 60명만 들어갈 수 있어요”… 7개의 폭포가 만든 신비로운 계곡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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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가 머물렀다는 계곡

칠선계곡
칠선계곡 / 사진=함양군 공식블로그

지리산 깊은 곳, 인간의 발길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비경이 숨 쉬고 있다. 설악산 천불동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리산 국립공원의 칠선계곡은 그 이름에서 짐작하듯 일곱 선녀가 노닐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 신비로운 풍경 뒤에는 험준한 산세가 빚어낸 냉엄함으로 인해 ‘죽음의 골짜기’라는 경고와도 같은 별명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이러한 양면성은 칠선계곡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단순한 등산 코스가 아닌,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갖춘 소수에게만 제한적으로 탐방이 허락되는 곳.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마을에서 시작되는 여정은 그래서 단순한 산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리산 칠선계곡
지리산 칠선계곡 / 사진=함양군 공식블로그

칠선계곡의 진면목을 마주하기 위한 첫 관문은 예약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구간은 선녀탕과 옥녀탕을 지나 비선담 통제소까지다.

붉은 칠선교를 건너며 시작되는 이 길은 원시림의 입구를 맛보는 전주곡에 해당한다. 그러나 통제소 너머,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가 빚어내는 핵심 비경은 오직 사전 예약을 통해 자격을 얻은 탐방객에게만 문을 연다.

국립공원공단은 칠선계곡의 생태를 보전하고 탐방객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가이드 동반 탐방 예약제를 운영한다. 매년 정해진 기간, 특정 요일에 하루 단 60명만 그 신비를 목격할 수 있다.

칠선계곡 폭포
칠선계곡 폭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처럼 엄격한 통제는 계곡이 품은 아름다움의 가치와 그 이면에 도사린 위험성을 동시에 방증한다. 모든 탐방객은 국립공원공단 예약 시스템을 통해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만 태고의 풍경 속으로 들어설 자격을 얻는다.

비선담 통제소를 지나면 계곡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속살을 드러낸다. 물안개를 피워 올리는 폭포들이 연이어 나타나며 탐방객의 땀을 식힌다.

칠선계곡 전경
칠선계곡 전경 / 사진=함양군 공식블로그

치맛자락처럼 넓게 퍼진다 하여 이름 붙은 치마폭포를 시작으로, 칠선계곡의 일곱 폭포 중 가장 대표적인 칠선폭포가 위용을 자랑한다. 약 10m 높이로 지리산의 다른 폭포에 비해 압도적인 규모는 아니지만,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풍부한 수량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계곡을 오르다 보면 유독 독특한 이름의 ‘대륙폭포’를 만나게 된다. 이는 1964년, 우리나라 산악계의 역사를 개척하던 부산 대륙산악회 회원들이 발견한 것을 기려 명명된 것이다.

칠선계곡 모습
칠선계곡 모습 / 사진=함양군 공식블로그

이토록 빼어난 풍광에도 불구하고 칠선계곡에 ‘죽음의 골짜기’라는 별칭이 붙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길을 벗어나면 발 디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험준한 산세와 예측 불가능한 기후 변화, 과거 안전장치 없이 무리한 산행을 시도하다 발생했던 안타까운 인명사고들이 이 이름에 무게를 더한다.

결코 낭만만으로 걸을 수 없는 길이며, 모든 발걸음에 자연에 대한 경외와 겸손이 요구되는 구간이다.

험난한 계곡길의 끝은 마침내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정상, 천왕봉으로 이어진다. 칠선계곡의 험로를 통과한 이들에게 천왕봉 정상은 더욱 깊은 성취감을 안겨준다.

칠선계곡과 시민
칠선계곡과 시민 / 사진=함양군 공식블로그

지리산 칠선계곡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유람지가 아니다. 태고의 신비와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위엄을 동시에 간직한 성역에 가깝다.

엄격한 탐방예약제는 불편함이 아니라, 이 위대한 자연유산을 온전히 보전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선녀가 노닐던 비경과 산악인의 땀이 서린 길, 그리고 경고의 목소리가 공존하는 칠선계곡은 우리에게 자연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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