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서 내리자마자 해발 1,172m”… 가을 정취 만끽하는 드라이브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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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치
국내 최고 가을 절경 만나는 드라이브길

정령치 드라이브
정령치 드라이브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지호

지리산의 장엄한 능선을 등산화 없이, 단 한 번의 가뿐한 호흡으로 마주할 수 있다면 어떨까. 마치 산의 정상부를 통째로 들어 올려 눈앞에 대령한 듯한 비현실적인 경험.

모두가 땀 흘려야만 닿을 수 있는 고산의 풍경을 자동차로 단숨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특별한 허락에는 유효기간이 존재한다. 곧 굳게 닫힐 하늘길, 그래서 우리는 올가을 정령치로 향해야만 한다.

지리산 정령치

정령치
정령치 / 사진=남원시 공식 블로그 임선영

대한민국에서 가장 깊고 너른 산, 지리산국립공원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정령치는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천면 정령치로 1523에 자리한 고개다.

행정구역상 주천면과 산내면에 걸쳐 있으며, 지방도 737번 도로의 가장 높은 지점이기도 하다. 이곳의 백미는 단연 정령치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순간 시작된다.

문을 열고 내리면, 그곳이 바로 해발 1,172m의 전망대다. 인근의 또 다른 고개인 성삼재(1,102m)보다도 약 70m가 높아, 자동차로 도달 가능한 지리산의 주요 조망점 중 가장 압도적인 시야를 제공한다.

정령치 가을 드라이브
정령치 가을 드라이브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지호

전망대에 서면 서쪽으로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부터 반야봉,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약 100리(40km)가 거대한 병풍처럼 펼쳐진다.

겹겹이 이어진 산의 능선들이 짙고 옅은 수묵의 농담처럼 번져나가는 풍경은 그 자체로 거대한 동양화다. 동쪽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바래봉 능선이, 발아래는 뱀사골의 깊은 계곡이 아득하게 펼쳐져 지리산의 다채로운 얼굴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정령치 주차장
정령치 주차장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지호

아름다운 풍경 너머, 정령치라는 이름에는 서기 1세기경 삼한시대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鄭)씨 성을 가진 장군에게 이곳을 지키게 했다는 전설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이 험준한 고개가 얼마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는지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단순한 풍경 감상지를 넘어, 천년의 역사가 스며있는 길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은 정령치에서의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정령치 너머, 고즈넉한 숲과 마애불의 속삭임

지리산국립공원 정령치
지리산국립공원 정령치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지호

만약 정령치의 광활한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잠시 차를 두고 고즈넉한 숲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정령치에서 성삼재 방향으로 약 1.5km 내려가면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을 만날 수 있다.

완만한 숲길 끝에 나타나는 거대한 암벽에는, 높이 4m에 달하는 본존불을 포함해 총 12구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고려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들은 단정한 옷주름과 온화한 표정을 하고 있어, 지리산의 웅장함과는 또 다른 평온함과 안식을 선물한다.

지리산의 가장 깊은 속살을 가장 편안하게 만나는 길. 하지만 그 허락된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하늘이 붉게 물드는 가을의 끝자락, 겨울의 장막이 드리워지기 전에 서둘러 정령치로 차를 몰아보자. 지금이 아니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지리산의 선물이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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