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보다 5.6배 긴 길이 있다니”… 남해·서해 잇는 순환 도보 여정

남해와 서해가 만나는 강진, 해남, 목포의 길목에서 역사적 인물들의 숨결과 거친 바다의 생명력을 깊이 있게 마주합니다.

코리아둘레길 시작점인 강원도 고성
코리아둘레길 시작점인 강원도 고성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핵심 요약

  • 코리아둘레길은 총 길이 4500km의 284개 코스로 구성된 순환형 도보 여행길입니다.
  • 해남 땅끝탑 구간은 휠체어 통행이 가능한 무장애 데크길과 스카이워크를 갖추고 있습니다.
  • 대중교통 이용자는 KTX 나주역에서 캠핑카를 대여하는 꿈카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산야에 물기가 스며들고, 야생 차나무 잎사귀 위로 빗방울이 구슬처럼 맺히는 계절이 온다. 이즈음 전남 강진의 오솔길을 걷노라면 청각을 가득 채우는 것은 새소리도, 바람 소리도 아닌 발 아래 낙엽 밟히는 소리다. 200년 전 한 학자가 유배의 무게를 안은 채 바로 이 길을 거닐었다는 사실이 새삼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2024년 9월 전 구간이 공식 개통된 코리아둘레길은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해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 해남 땅끝마을, 인천 강화 평화전망대를 거쳐 다시 고성으로 돌아오는 순환형 초장거리 도보 여행길이다. 총 길이 약 4500㎞, 284개 트레일 코스로 세분화된 이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 약 800㎞의 5.6배에 달한다.

그 거대한 여정에서 남해와 서해가 처음 만나는 접점, 인문의 향기와 조류의 포효가 공존하는 강진·해남·목포 구간은 코리아둘레길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구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강진 만덕산 자락에서 만나는 정약용의 유배 흔적

다산초당
다산초당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지호

남파랑길 83코스의 무대인 강진은 전남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로 일대를 중심으로, 해발 약 408m 만덕산이 병풍처럼 두른 분지 지형에 자리한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이곳으로 유배된 정약용(1762~1836)은 만덕산 자락 다산초당에서 생애 방대한 저술 작업을 이어갔다.

단청도 화려한 장식도 없는 소박한 한옥 건물인 다산초당 마당에는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약천과 연지석가산이 지금도 남아 있어, 샘물로 차를 끓이고 작은 연못에서 잉어를 기르던 일상을 고요히 증언한다. 초당에서 이어지는 약 1.3㎞ 숲길은 야생 차나무·동백·소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오솔길이며, 30분 남짓 걸으면 백련사에 닿는다.

주지 혜장선사와 신분과 종교를 초월한 우정을 나눴던 이 공간에서는 사찰 뒤편으로 펼쳐지는 녹차밭 풍경이 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눈길을 잡아끈다.

해남 땅끝탑, 두 바다가 맞닿는 상징의 자리

해남 땅끝탑
해남 땅끝탑 / 사진=ⓒ한국관광공사 김지호

남파랑길의 종착점이자 서해랑길의 출발점인 해남 땅끝마을은 코리아둘레길 전체 순환 구조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이 일어나는 지점이다. 높이 약 9m의 땅끝탑에 이르는 길은 해안을 따라 경사가 완만하게 조성된 데크길로 이어지며, 유모차와 휠체어도 비교적 편하게 통행할 수 있는 무장애 구간으로 안내된다.

투명 바닥 구조의 스카이워크에서는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감각과 함께 남해·서해가 맞닿은 해안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땅끝탑 인근에 설치된 대형 종은 방문객이 직접 타종해 여정의 시작과 끝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

한편 달마산 기암괴석 아래의 미황사, 절벽 끝 암반 위의 도솔암은 남파랑길 마지막 구간의 조망 명소로 산세와 남해 바다를 동시에 품는다.

목포 서해랑길, 근대 도시의 골목을 걷다

울돌목 해협
울돌목 해협 / 사진=ⓒ한국관광공사 이범수

해남을 지나 서해랑길은 목포로 이어진다. 16·18코스 일대는 삼학도공원·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근대역사문화거리가 도보권 안에 밀집해 역사와 인문 콘텐츠를 함께 흡수할 수 있는 구간이다. 삼학도공원에는 수로를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을 기리는 조형물과 공간이 목포 특유의 서정을 더한다.

근대역사문화거리에는 붉은 벽돌 건물·적산가옥·옛 일본 영사관 등 개항 도시 목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발걸음 자체가 100년 전 근대 도시를 관통하는 여정이 된다.

이 구간에서 울돌목을 만나면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치른 격전지의 무게가 더해진다. 최대 순간 유속 초속 6.5m에 달하는 거센 조류는 지금도 해협을 거칠게 훑으며, 조류발전소까지 가동할 만큼 강한 물살로 알려져 있다.

해남126 호텔과 꿈카, 걷기 여행 인프라

해남126 오시아노 호텔
해남126 오시아노 호텔 / 사진=해남126 오시아노 호텔

오시아노 관광단지 내에 위치한 해남126 오시아노 호텔(전남 해남군 북평면 오시아노로 140)은 한국관광공사가 소유·운영하는 공공 숙박시설이다. 고산 윤선도 고택 녹우당의 한옥 건축양식에서 모티브를 얻어 홑겹 배치와 중정 구성 등 전통 요소를 현대적으로 해석했으며, 객실 대부분이 서해 조망으로 계획됐다.

인피니티 풀에서는 수면과 수평선이 이어지는 듯한 경관을 연출한다. 교통약자와 고령자를 위해 저상형 침대·넓은 문폭 옷장·장애인용 화장실을 갖춘 배리어프리 객실도 운영한다.

대중교통 이용자를 위한 ‘꿈카’ 서비스는 KTX 나주역 도착 후 2-5인이 약 10만 원으로 캠핑카를 이용하고 오시아노 캠핑장에서 숙박할 수 있는 방식이다. 코리아둘레길은 해파랑길·남파랑길·서해랑길·DMZ 평화의 길로 구성되며 구간별로 나누어 걷는 방식으로 접근 가능하다.

해남 땅끝마을
해남 땅끝마을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리아둘레길 전 구간 완주자가 2024년 5월 말 기준 251명에 그친다는 사실은 이 길의 규모가 단순한 걷기를 넘어선 도전임을 짐작게 한다. 하지만 강진·해남·목포 구간처럼 짧게 끊어도 정약용의 실학 정신, 조류의 포효, 근대 도시의 골목이 한 선 위에 얹히는 구간이라면, 완주가 아니어도 충분히 깊은 여행이 된다.

장마가 걷히는 초여름부터 단풍 빛이 번지기 전까지, 차나무 향이 오솔길에 가득한 이 계절이 강진과 해남을 걷기에 가장 조용하고 선명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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